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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남북한 체제경쟁 70년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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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9.03.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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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도된 인간관‧분열적 사회관
적대적 세계관이 분단의 궁극적 원인
반 세기만에 남한은 눈부신 문명국 돼

 
역사의 흐름 거스르면 몰락의 길 밖에
자유‧민주‧인권‧복지‧평화가 대세
북의 핵‧경제 병행은 자멸을 재촉할 뿐

 
모스크바협정을 통해 남북 신탁통치가 사실상 확정되고, 소련이 북한을 신탁통치하게 된다.

 

김병길 주필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전승 4개국 외상이 모여 패전국 일본이 물러간 한국의 운명(모스크바협정)을 결정했다. 그들은 한국에 민주적 임시정부를 세우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군과 소련군이 공동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에따라 4개국이 임시정부를 5년간 신탁통치 하자는데 합의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모스크바 회담에 임한 미국 외상은 전날 밤에 마신 보드카에 나가 떨어져 숙취 상태였다. 이 협정을 통해 소련은 자신들의 전략에 따라 연합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나아가 미군이 점령한 남한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권리와 기회를 확보했다.

소련군은 북한 지역 지방 행정을 담당할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남한에서 군정을 펼친 미국군과 달리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남아 주민의 환심을 사는 가운데 인민위원회를 통제하는 점령정책을 펼쳤다.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결성됐다.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는 임시정부였다.
북한의 공산세력은 국민의 사회주의적 동원과 통제를 위해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했다. 지주 자본가, 지식분자, 개인주의, 이기주의 따위는 청산해야 할 인간형의 상징이 됐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일반 인민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이른바 북한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조국 소련에서 신인간의 전형을 발견했다. 그들이 보기에 계급 착취가 사라지고 관료제가 폐지되고 인간들이 몰인격으로 헌신하는 소비에트 현실은 영원히 축복받은 인류의 재탄생이었다.

그렇지만 무슨 이념과 주의로는 인민을 신인간으로 개조할 수 없었다. 이념과 주의는 너무나 쉽게 한 인격으로 대체됐다. 항일무장투쟁을 승리로 이끈 불굴의 영웅 김일성 장군이었다. 신화가 쓰이기 전에 주인공부터 선발했다. 1946년 7월 김일성 종합대학이 설립됐다. 공자는 인간은 나이 30세에서야 독자적 인격으로 선다(而立)고 했다. 이제 겨우 34세의 젊은이를 우상으로 받드는 대학이었다.


북한이 발간한 그 젊은이의 전기는 모두 7종인데, 새로 발간할 때 마다 내용이 부풀려지고 이전의 것은 폐기됐다. 그는 1912년생이며, 본명은 김성주였다.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으며,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중국인 유지와 재혼했다. 그 덕에 지린(吉林)의 유명 사립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다. 가출한 그는 비적활동에 종사했으며, 위험에 처하자 양세봉이 이끈 독립군에 참여했다.
1937년 보천보라는 마을을 습격한 항일연군 소부대의 지휘관 김일성이 김성주가 아님은 거의 확실하다. 그 김일성이 전사한 뒤 새롭게 편성된 부대의 지휘관 김일성이 과연 김성주 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 부대는 일본 관동군의 토벌을 피해 1940년 소련으로 넘어갔으며, 1945년 당시 김성주는 부대장으로서 소련군 대위 신분이었다. 소련군은 그에 관한 보고서에서 특별한 전공(戰功)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원수 스탈린이 그를 북한 통치자로 발탁한 것은 그가 소련군 장교였기 때문이었다. 김일성으로 이름을 바꾼 김성주가 소련 군적을 정리한 것은 1957년의 일이다.
역사의 신은 이 같은 이력의 젊은이를 신인간의 상징으로 받든 그 나라의 앞날이 ‘노예의 길’ 밖에 없음을 예고했다.
북조선인민위원회는 20개 정강의 개혁을 김일성 명의로 발표했다. 인민의 자유와 재산은 보장된다고 했지만, ‘개인’은 북한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의 토지개혁이 행해졌다. 지주들은 다른 군으로 이사해야 농지를 분배 받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남하한 인구가 1948년까지 대략 100만 명에 달했다. 북한 전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처럼 분단을 향해 먼저 달린 쪽은 북한의 공산세력이었다. 그들의 오도된 인간관, 분열적 사회관, 적대적 세계관이 분단을 초래한 궁극적 원인이었다.

‘관제 민족주의’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엊그제 진보학자로 평가받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는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가 이념적 지형을 자극해서 촛불시위 이전 못지않게 더 심한 이념 대립을 불러오고 있다.(...)앞으로 100년간 정치가 발전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세력에 정반대로 맞선 세력인 북한은 민족적이고, 대한민국은 ‘반공=친일’이 낳은 반(反)민족적 존재로 보고 있다. 그런데 반세기 만에 그 ‘반민족’이라는 국가는 눈부신 문명국가가 됐다. 반면 자칭 ‘민족적’이란 집단은 나라를 거덜 내고 말았다.
오늘의 한반도는 결국 두 역사관의 결전장이 돼 있다. 인류 역사에 때로는 반동의 시기가 있었다.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지도자(또는 국가)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면 몰락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앞으로 국가 통치 이념으로 자유·민주·인권·복지·평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그것이 북한이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다. 북한의 핵·경제 병행은 자멸을 재축할 뿐이다. 북한 주민이 헐벗고 있는 것은 제재 때문이 아니라 제재가 부과될 것임을 알면서도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강행한 북한 정권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더는 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 신화에 기대어 정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경제적 성과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체제의 정당성 확보와 정권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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