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봉사자인 가이드러너와 뛰고 있는 이윤동씨.  
 
   
 
  ▲ 자원봉사자인 가이드러너와 뛰고 있는 이윤동씨  
 
   
 
  ▲ 그는 몸으로 장애인식 개선을 하고 있으니 이제 마라톤을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고, 스스로를 ‘장애인식 개선 전도사’라고 자칭한다.  
 
   
 
  ▲ 그는 몸으로 장애인식 개선을 하고 있으니 이제 마라톤을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고, 스스로를 ‘장애인식 개선 전도사’라고 자칭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42.195km 마라톤 풀코스.
그는 성한 몸으로도 도전하기 어려운 극한 운동을 눈을 감고 자원봉사자의 손에 이끌려 마라톤 풀코스를 200번이나 달렸다.
“앞도 잘 못 보는 사람이 뭣 한다고 그리 뛰노?”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는 말했다. “앞도 잘 못 보는데 다리라도 성해서 달릴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라고.
시각장애인 이윤동씨(64)는 마땅한 생활스포츠가 없었던 20년 전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어 마라톤을 시작했다.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고 산비탈 길도 달렸다. 숨이 차고 몸도 아파왔고 도전은 멀고도 험했다.
시작 8개월 만에 자원봉사자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 해 보라고 했다. 마라톤이라고 하면 지나가는 선수들 박수나 쳐주고 TV에서 중계방송이나 보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는 드디어 도전장을 냈다.
2003년 10월 두려움과 긴장, 설렘 속에 도우미와 끈을 맞잡고 출발선에 섰다. 가뜩이나 안 보이는 눈이 더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고된 훈련을 해왔던가?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 도전에 성공했다.
그 이후 이윤동씨는 마라톤을 밥 먹듯이 했다. 폭풍우 속을 달리고 폭염 속을 달렸다.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게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려움이 어찌 없었겠는가. 넘어져 다치는 것은 일상이 됐고 나뭇가지에 찔리고 구덩이에 빠지고 앞사람 뒷발길에 걷어차이고 길 가장자리를 밟아 발을 삐는 등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산악마라톤도 하고 100km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을 14시간여 동안 완주를 했으며 임진각에서 울산까지 590km 국토종단마라톤도 했다.
이 정도 고통을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면 힘든 고비도 어느 새 이겨냈다.
2010년 10월, 마라톤을 시작한지 7년 만에 풀코스 100회 완주를 맞이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100이라는 숫자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 때문에 마음이 나태해 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의 마라톤 일기장에는 100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100회째는 망백(望百)이라 하고 101회를 달리면 99.01회 151회는 99.51회로 적어 절대로 100회를 채우지 않고 있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어느 듯 200번째 고개를 넘었다. 아니 99.100회에 다다랐다.
마라톤 인생 20년. 지나온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에게 마라톤은 고진감래(苦盡甘來),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위무성(無爲無成)의 소중한 진리를 몸으로 터득하게 한 삶의 위대한 스승이 됐다. 그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끈을 잡고 눈이 되어 길 안내를 해 준 수많은 가이드러너들과 아내의 희생과 봉사가 있었다.
달리면서 어떤 사람들은 ‘야! 안 보이는 사람도 저렇게 잘 달리는데 나는 이게 뭐고?’ 그렇게 말들을 한다. 말로 장애인식 개선 홍보를 한다고 피켓 들고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몸으로 장애인식 개선을 하고 있으니 이제 마라톤을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고, 스스로를 ‘장애인식 개선 전도사’라고 자칭한다.
오는 4월 20일 제39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시각장애인 1급 마라토너 이윤동씨의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라는 20년 인생역전의 모습을 담은 장애인 인식개선 사진전이 (사)울산광역시장애인총연합회 주최로 4일과 5일 울산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이윤동씨의 마라톤 대회 참가 모습 외에 메달, 상장 등 270여점이 펼쳐진다. 고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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