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 왔다 임실치즈 만든 ‘피자 신부님’ 지정환
한센병 환자 맨손으로 돌봐온 오스트리아 수녀 두분
한국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 ‘천사’ 잊지말자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필자는 임실에 가본 적이 없다. 사실 임실이 어디 붙어있는 지도 잘 모른다. 그저 전북 어딘가에 있으리라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임실치즈는 먹어봤다. 그 임실치즈를 처음 시작한 장본인은 우리나라에 선교활동을 하러 왔다가 정착하신 벨기에 신부님이다. ‘임실치즈의 아버지’ 혹은 ‘피자 신부님’으로도 불렸던 지정환 신부님(디디에 세스테벤스). 그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는데 평생을 바치고 4월 13일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신부님은 1931년생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귀족 집안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8년 가톨릭 사제가 된 그는 6·25전쟁의 여파로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하다는 한국행을 결심한다. 1960년 전주 전동성당의 보좌신부로서 첫 사목활동을 하다가 1961년 부안성당 주임신부가 되어 부안군으로 떠났다. 그 곳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농민들의 생활상에 충격을 받고 경제적인 도움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한다. 그 후 1964년 척박한 임실군에서 농민들이 가난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다시 목격하게 된다. 그리곤 풀밭이 많은 임실에서 키울 요량으로 선물 받은 산양 2마리로부터 나온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수많은 실패가 뒤따랐다. 3년이 지나도 치즈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신부님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견학을 가서 3개월 동안 기술을 배워왔다. 치즈 제조법은 산업 기밀이었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한 치즈 기술자가 노트에 기술을 적어 신부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1969년이 되어서야 균일한 치즈 제작에 성공한다. 하지만 치즈 수요가 처음부터 많았던 건 아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수요가 점차 늘어나 산양유에서 우유로 원료를 바꿨고, 임실치즈는 임실치즈테마파크와 함께 임실군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 신부님은 1984년에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인 ‘무지개가족’을, 2004년 사제직을 후임 신부에게 물려주고는 2007년에는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평생 나눔의 삶을 이어온 신부님의 공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다.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 지정환 신부님 말씀이다.

비슷한 시기에 꽃다운 20대 후반의 나이로 우리나라에 와 소록도에서 평생을 고스란히 나환자들을 돌보며 헌신하였던 두 분 수녀님도 잊을 수가 없다. 주민들은 그녀들을 ‘소록도 천사’ 혹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라 부른다.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마리안느 수녀님와 마가렛 수녀님이다. 전남 고흥반도에서 조금 떨어진 섬, 생긴 모습이 ‘어린 사슴’ 같다 하여 이름 지은 소록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접근하기를 꺼렸던 그 곳에서 수천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섬김과 나눔’을 몸소 실천했다.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맨손으로 돌봐온 두 수녀는 2005년 11월 이른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주기 싫다며 ‘사랑하는 친구·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을 남겼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얘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면서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고국인 오스트리아의 작은 방 한 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는 마리안느 수녀님의 방문에는 “선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라”는 한글이 붙어 있다. 평생 마음에 담아둔 말이 아니겠는가. 외로운 섬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신 두 수녀님이 남긴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머나먼 곳까지 어둠을 밝히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을 덥혀 주리라 믿는다. 두 분 수녀님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위한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 사람보다 더 대한민국을 사랑한 세 분이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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