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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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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하 시인
  • 승인 2019.06.0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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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힘이 되는 매곡 신기 ‘벽화마을’
화려하지 않지만 선인 혼 지켜지고 있어
자신 되돌아볼땐 어김없이 이 골목 찾아

 

이강하
시인


새로운 나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즐거워진 만큼 두툼하게 자라난 자만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현재 당당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보다 고충이 많은 사람에게 자만심을 하소연처럼 쏟아낸다면 진정 마음이 후련해질까. 그렇지 않다. 관계없는 과도한 자랑은 열등감일 수도 있다. 그 열등감은 어느 순간 무력감을 낳고 그 무력감은 점점 긍정에서 멀어지는 언어에 갇히게 된다.
오늘도 나는 방치했던 열등감을 떨쳐버리려고 벽화마을을 만나는 중이다. 나에게 힘이 되는 건강한 골목이다. 골목은 넓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이다. 그 옛날 선인들의 혼이 지켜지고 있는 마을이다. 골목을 지나가기만 해도 담벼락 아래 핀 풀꽃만 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신기마을’은  매곡으로 이사를 와서 우연히 알게 된 마을이다. 골목이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게 될 때도 있다. 사실 아파트대단지 사이에 이런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난 몇 달 동안은 일부러 이곳을 지나 볼일을 보러가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골목은 걸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감나무가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저 집이 나의 친정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초록 대문 깊숙이 고개를 넣고 한참을 서있기도 했었다.

얼마 전 일이다. 해바라기가 그려진 벽화를 본 후 급히 골목을 휘돌아나가는데 대문을 열고 나오신 할머니들이 보였다. 그 중 키 작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봐라, 저 부추도 꽃인 거라. 저 시멘트 속을 파고 나오는 저 힘 좀 보소. 아휴, 너무 예뻐서 뽑지를 못해. 부추꽃이 필 때까지 그냥 놔둬야겠어. 젠장, 나도 저리 예쁠 때가 있었는데.” 할머니의 휘어진 열손가락은 유모차를 꼭 붙들고 있었다. 다리도 불편하셨다. “어쩜 저리도 곱게 나이 드셨을까?” 급작 친정어머니의 옆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골목을 좀 더 걷다 보면 아담한 돌담집이 나온다. 그 집에는 오래된 엄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그 옆에는 운동기구들이 있고 누구든 편히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골목의 담벼락마다 고향을 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자는 벽화보다는 집 안 풍경에 더 관심이 많다. 도둑고양이처럼 담을 넘어 들어가 살금살금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싶어 한다. 어제와 달라진 나를 만난 것에 감사하면서 이 마을은 오래도록 지켜져야 한다고, 나무와 숲이 함께 공존하면서 발전해가야한다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사실 골목 어느 쯤엔가 무너진 돌담이 보여서 마음이 참 아팠다.

이 마을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필자는 느티나무를 만날 때마다 눈이 맑아진다. 마을의 큰 어른을 만난 것처럼 저절로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게 된다. 벌써 느티나무에도 잎이 무성하고 느티나무는 왼쪽 무화과나무를 자주 내려다본다. 작년에 열린 열매가 채 떨어지기 전에 새잎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 무화과나무가 참 대견하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았다.

느티나무를 지켜보는 흙담집에는 모과나무가 산다. 서로는 서로를 지켜주느라 남은 계절 내내 바쁠 것이다. 모과꽃이 지고 열매가 엄지손가락 만해졌다. 모과는 이름과 달리 열매의 효능도 좋다. 꽃과 잎처럼 곱고 착하다. 우습게도 나의 어렸을 때 별명이 모과였다. 왜 어머니께서는 모과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을까?

벽화마을의 골목은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고향집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같다. 열등감과 욕심도 사라진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이 그렇게 만든다.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서 푹 꺼져 있는 느낌이 들지만 깨끗하고 아늑한 마을이다. 골목을 몇 바퀴 돌다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착한 형제도 만날 수 있고 지인과 친구, 강아지와 고양이도 만날 수 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만큼 슬픈 일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이 골목에 서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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