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백색국가 제외로 국내산업 비상
대기업-중소기업 협업으로 소재 국산화 최우선
장밋빛 울산 미래 위해 ‘투-트랙’ 전략 수립해야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지금 전 세계는 전쟁터다. 단지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살벌하다. 또한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야기된 무역전쟁은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불허다.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경제보복임에도 발뺌으로 일관하고, 심지어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불난 집에 기름까지 퍼붓는 양상이다. 진정한 경제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리 고유의 소재, 부품, 장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그래서 R&D(연구개발)가 더욱 중요하다는 거다. 장치산업만으로 돈 버는 시대는 갔다. 이젠 기술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기업경쟁력이 곧 국력이다.

울산은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국가 주력산업이 공존하는 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울산처럼 막강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이런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는 않고 너무 먼 곳만 바라봐선 안 된다. 그러기에 주력산업의 고도화가 최우선이다. 여기엔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이 필수다. 컨트롤타워 역할은 2016년 말에 창립된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이 맡고 있다. 전국의 정보산업진흥기관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울산이 불과 2년여가 지난 오늘날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창립 대비 예산은 12배, 인원도 6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결과다. 큰 박수갈채를 보낸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주력산업 고도화, 신산업 육성, 에너지산업 등 3개 분야에서 10개 분과를 구성해 4차 산업혁명 U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화학ICT융합 분과 위원장이다. 구체적으론 조선해양 Industry4.0 사업, 정밀화학 유틸리티성 자원공유 지원사업, 첨단 디지털스마트 자동차사업, 지역 SW성장 지원사업, 지역 ICT융합기술 사업화 등 주력산업의 ICT융합을 촉진하고, 3D프린팅 친환경자동차 부품사업, 스마트팩토리 제조공정 개선사업, 로봇비즈니스융합 지원사업, 게놈엑스포 및 바이오 융합사업 등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지구는 탄소사회에서 수소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래서 울산은 수소산업 선도도시를 선점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비록 규제자유특구 선정에서 한 박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시민 스스로 수소산업진흥원 울산유치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것은 석유화학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울산주력산업으로 버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젠 우리 모두 힘을 한 곳에 모아 부단하게 마음을 다림질하여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야 할 때다.

얼마 전 신(新)촉매 개발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촉매는 석유화학공정의 핵심 소재로 국내 자립도는 5%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촉매 대체 시장은 매우 크지만 좋은 성능의 신촉매를 개발한다손 치더라도 수요자인 대기업들이 안 써주면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40년 가까이 촉매 개발에만 매진했다는 A 대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한 대기업이 “ppm(100만분의 1) 단위의 순도를 가진 새로운 전자소재를 개발하자”는 제안에 개발에 성공한 후 정작 생산에 들어가려 하자 ppb(10억분의 1) 수준으로 스펙을 올리는 바람에 철수했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아직은 많은 소재 분야에서 일본이 앞서있다. 그러기에 소재 국산화 키를 쥐고 있는 대기업과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국내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기업은 아직도 수직 또는 갑을관계를 관행처럼 적용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 관계로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그 영향은 소재 종속까지 진행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만나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의 가치를 실행할 상생협력 혹은 동반성장 제도가 필요하다. “현행 법·제도 하에선 세상에 없는 신물질을 만드는 건 불법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는 B 대표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장밋빛 울산 미래를 위해 투-트랙(Two-track)  전략을 균형 있게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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