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의 잇따른 사고…대책 여전히 미흡
해외법제 쓰기보단 실정 맞는 제도 만들어야
철저한 기본조사·경험 바탕 안전관리 최우선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얼마 전 울산 염포부두에 정박해 있던 화학제품 운반선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배 근처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근로자 1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학물질이 많아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거대한 불기둥이 버섯처럼 번지면서 멀리 떨어진 자동차 안에서도 열기를 느낄 정도로 그 폭발 위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사고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화재진압으로 시민의 불편과 불안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이번엔 7년 전 구미 불산 누출사고에서 보았던 사고대응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회피하던 그 시절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육지에선 울산동부서방서 등 소방대원들의 사투(死鬪)가 있었고, 바다에선 울산해경과 멀리서 달려온 부산해경이 공동으로 양공(兩攻) 진압작전을 펼쳤다. 그야말로 관련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의 신속한 협업과 적극적인 사고대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여러 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목숨을 걸었던 김재화 동부소방서장을 비롯한 소방대원들의 용기와 애국심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대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실제상황을 가정해 유관기관들이 함께 반복된 훈련을 통해 터득한 대응능력이 위기의 순간에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단 한 번의 사고를 위해서. 이번 선박화재 사고를 계기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석유화학단지에서 이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니 너무 끔찍하다. 최근까지 석유화학단지 내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이러한 사고 발생은 사고대책의 효율성이 부족하거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책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수십 년간 안전 분야에 종사해온 전문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개선방안을 고찰해본다.

현행 관련법에 모순되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법·규정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새로 적용될 법과 체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존 규정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정부 및 공공기관만 바라보며 의존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선진국과 같이 안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엄격한 관리 및 감독을 하는 것이다. 안전 관련 대책 및 이행은 담당자가 스스로 하는 자율 규제 안전관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사고가 발생해도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책과 홍보 등을 선도하는 리더십이 부족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하청업체나 현장 직원의 문책으로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사고보다 더 확대돼 대책이 오도될 때가 많다. 언론 대응 능력도 태부족(太不足)이다. 또한 사고와 관련해 상벌(賞罰)을 너무 강조하면 다른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답습해 추후 사고은폐로 인해 더 큰 재해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상벌 관련 사항을 최소화하는 추세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우선 권고사항이다.

안전은 맹목적으로 투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해외 법제를 무리하게 복사해 쓰지 말고 철저한 기본조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실정에 맞는 안전관리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센서, 가상·증강현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드론 등을 적극 활용하자. 한 중소기업이 외로이 테크노산업단지에 구축하고 있는 화학사고 누출 대응센터를 석유화학단지와 연계할 방도를 찾고 합동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대비하자.

무엇보다도 민심 수습용 사고조사나 일회성 대책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사고가 나도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속적인 위기관리에 바탕을 둔 안정적인 안전관리가 중요하다. 국가의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에너지산업과 인간의 의식주에 필수적인 석유화학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깨끗한 지구환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전관리가 최우선임을 절대 잊지 말자. 울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걸음걸음마다 안전이라는 디딤돌이 함께해야 한다. 안전은 우리 권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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