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호 시인의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육필원고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천수호

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 댄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鯫), 잉어 추(鱃), 쏘가리 추(鯞)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멩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 올린

비린내 묻은 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鯫, 鱃, 鯞만

자꾸 잡아 올린다.

●가을바람이 불쏘시개처럼 살아나기 시작하는 요즘은 얼큰한 추어탕 생각이 절로 난다. 시인은 추어탕의 재료인 미꾸라지를 도랑에서 잡는 게 아니라 옥편에서 눈살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며 잡는단다. 참 기발한 발상이다. 더군다나 동음이의어 추자가 백여 마리도 넘는 곳에서 말이다. 가뜩이나 눈의 그물망을 잘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닮은 추란 놈은 복잡하면서도 헷갈리기 좋게끔 조합된 형상이다. 시인의 말마따나 송사리 추(鯫)인지, 잉어 추(鱃)인지, 쏘가리 추(鯞)인지 잘 못 보면 그놈이 그놈 같다. 대충 훑어가지고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시인 천수호(千壽鎬·1964년~ ). 경북 경산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명지대학교 문학박사.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으로 문단 데뷔. 2007년 문예진흥원 창작기금 및 신진예술가 지원금 받음.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2009년 민음사), 《우울은 허밍》(2014년 문학동네) 출간. 현재 명지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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