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 발전로드맵 총괄
33년 동안 수립한 경험·성과 자랑스러워
퇴임후에도 후배들 위한 마중물 돼 주고파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화학의 중요성을 느껴본 적은 있는가. 학창시절에는 가장 어렵고 피하고 싶은 과목으로 기억하고 있진 않은지. 하지만 조금만 둘러봐도 화학 없이는 아무 생활도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입는 옷과 이불, 1년 내내 먹을 것을 선사하는 비닐과 종자(씨앗), 농약과 비료, 주위에 있는 온갖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들, 그리고 필수품이 돼 버린 핸드폰과 자동차 소재 등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의식주 생활이 지속되는 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화학산업은 사라질 수 없다”라고 필자가 열심히 외치는 이유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핵심이 되는 로봇, 드론, 신약, 3D 프린팅, 자율주행차 등의 신소재도 모두 화학에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혁명을 소재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 앞으로도 소재를 개발하는 화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화학산업의 중요성과 그 위상에 대해 잘 모르며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화학소재의 중요성을 온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준 장본인은 일본이다. 그 점에 대해선 정말 감사한다. 늦게나마 정부나 정치권도 산업생태계의 부실성과 취약성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거창한 정책 발표로만 생색낼 것이 아니라 치밀한 액션플랜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근대화는 ‘석유화학 3형제’가 있어 가능했다. 1972년에 준공된 울산이 맏형인 셈이다. 필자는 대산(2007년), 울산(2010년), 여수(2013년) 등 우리나라 3대 석유화학단지 발전로드맵 모두의 총괄책임자로서 수립한 경험과 성과를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특히 2009년부터 울산 RUPI사업단장으로서 약 1조 7천억원의 사업비가 수반되는 100대 액션플랜을 수립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더불어 최근에는 Post-RUPI 사업을 추진하며 타 주력산업과의 융합은 물론, 4차 산업혁명 대비, 산업안전 대책 마련 등 다방면에서 울산 석유화학산업 고도화와 R&D를 통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와도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신산업 육성의 투-트랙 전략을 잘 구사하면 여전히 울산이 국내 최고의 산업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이를 위해선 산업단지의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배출을 극소화하며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사업들을 쉼 없이 발굴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스마트 공장 구축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 생산 설비관리부터 물류, 품질, 에너지, 환경, 안전까지 공장의 다양한 제품 제조과정을 빅데이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제어 가능한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앞으로 울산이 세계적인 스마트 산업도시로의 혁신 변환을 기대한다.

현재 울산경제 나아가 한국경제의 버팀목은 석유화학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그리고 갈수록 심각한 미세먼지는 지구에게 던지는 심각한 경고다. 그러므로 향후 석탄·석유 등 탄소사회에서 친환경 수소사회로의 변환은 필연이다.

이번에 지정된 수소 규제자유특구는 크나큰 기회다. 전국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수소산업 인프라를 울산만큼 잘 갖춘 곳은 없다. 세계적인 석유화학산업과 자동차산업이 한 곳에 집적된 곳이 바로 울산이다. 앞으로도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각오다. 한국수소산업협회 이사 및 그린수소포럼 준비위원장 그리고 수소산업진흥원 울산 유치위원회 공동대표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

33년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 눈 한번 질끈 감았을 뿐인데, 오늘이 공식적으로 한국화학연구원을 정년퇴임하는 날이다. 다행스럽게 이후에도 계속 울산에 남아 통합 파이프랙 구축 사업이나 통합 물공장 설립 등 못 이룬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거나 ‘나눔과 섬김’ 정신으로 스스로를 낮출 때, 그리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경험했다. 앞으로 후배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인생 선배로서 마중물이 되어 주는 것이 자그마한 꿈이다. 울산과의 인연, 이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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