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기사들은 이기든 지든 복기(復棋)를 한다.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또 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복기는 자기반성 시간이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알려준다. 패배의 아픔이 클수록 복기를 해야 한다. 승자는 무엇을 보고 패자는 무엇을 못 봤는지 짚어 봐야 한다. 진 날에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쓰라려도 복기를 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니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바둑을 이기려면 묘수가 필요할까? 아니다. 실수가 적은 쪽이 이긴다. 명국(名局)은 묘수가 많이 나온 대국이 아니라 양쪽 모두 실수를 하지 않은 대국이다. 실수를 덜 하는 게 중요하기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이나 민주당이나 잘해서 표 얻는 건 아니다. 누가 더 못하나 경쟁하는 식이다. 대통령∙여당의 이탈표심이 한국당으로 건너오지 않고 있다. 실수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최순실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조국 사태도 더 큰 게 터지지 않는 한 내년 총선까지 갈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어떤 수를 둬야할까? 구태를 벗어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 총선은 중도층 끌기 싸움이다. 그들에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잘하진 못해도 실수 안하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의도에서는 불출마 종용과 불출마 철회가 난무하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 눈치 10단이 된다는데, 정치적 노림수 없는 불출마는 매우 드문 일이다. 2016년 비례대표(자유한국당)로 정치판에 들어간 조훈현 9단이 패배를 인정하고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조 의원은 “금배지를 던지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1982년 국내 최초로 9단, 즉 입신(入神)에 이른 고수다. 금배지를 달았지만 정치판에서는 하수였다. 바둑은 약자하고만 둘 순 없다. 언젠가는 강자와 붙게 돼 있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둑의 길에 들어 선 다섯 살 때부터 지고 이기고는 인생의 일부였다. 흑돌과 백돌로 ‘가지 않은 길’을 놓아 본 것이 그의 66세 국회의원 4년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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