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기민속무용학박사

옛 옥교동 중앙시장과 새치 굴다리 앞 ‘칼국수 골목’
1983년 공업축제 참여 대학생들에게 던지듯 만든 음식
시대적 상황·지역민 애환 담긴 울산 전통먹거리 문화

1980년대 타 지역에서 울산대학교로 유학을 온 학생들은 한창 젊은 나이에 하루 먹는 끼니에 매우 민감하였다. 
그들은 싼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녔고, 그곳에 오면 서로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친구이자 선후배관계의 동료들이 앉아 있었다. 그곳은 울산 중구 옥교동 115번지인 중앙시장과 새치 굴다리 앞의 골목길인데, 학생들은 그곳을 ‘칼국수골목’이라 하였다. 그들은 ‘칼국수골목에 가자’라고 하면 응당 이곳에 집결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점 골목으로 통하였다. 
이렇게 칼국수골목은 학생들이나 배고픈 사람들에게 싼 가격으로 만족스럽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곳으로, 울산의 명물이 되었다. 하지만 재개발에 의해 칼국수골목은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 울산 시민들은 이 골목에서 먹었던 칼국수를 생각하며 향토적인 향수를 가져오게 한다. 필자가 이곳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살아온 토박이이고, 당시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칼국수를 먹었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골목에서 칼국수 장사를 했던 사람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음식가격을 저렴하게 하고, 양을 많이 주었다. 그의 영업은 번창하여 온 동네를 칼국수골목으로 전환하게 하였다. 
1983년 여름 울산은 축제가 한참이었다. 울산공업축제였던 것이다. 울산대학교 민속극연구회 ‘얼쑤’동아리 학생들은 이 축제에 참여하여 농악 길놀이를 하였고,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민속극 공연을 하였다. 당시에 참여한 인원들은 약 50명 이상으로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었다. 당시에 그들의 식사는 값이 싸고 양이 많은 칼국수이었다. 그들은 칼국수골목에 집결하였는데, 칼국수를 파는 주인은 많은 학생들을 맞이하여 칼국수를 빚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반죽을 손으로 떼어내어 길가에 있는 물솥에 던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칼국수를 기다리는 배고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재미난 퍼포먼스이었다. 
그때 국어국문학과를 다닌 대학생인 김종훈(현 울산 국회의원)씨가 걸걸한 말투로 ‘아저씨, 그 던지기탕 나도 주소’ 하는 바람에 함께한 대학생들도 ‘던지기탕’이라 하였다. 바쁜 와중에 만들어진 던지기 탕은 바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칼국수보다 던지기탕을 주문하였고, 칼국수집 주인은 이를 메뉴의 한 형태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대학생은 자신만의 추억으로 젊은 시절에 웃고 넘기는 사실이었지만, 이는 울산의 대중적인 음식문화가 탄생되는 현장이야기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귀하게 여겨서 함부로 던지지 않는데, 특히 칼국수는 전통적으로 밀가루로 만든 고급음식이었다. 이러한 칼국수가 울산중앙시장 골목에서 번창하였고, 여기서 던지기탕이 탄생되었다. 이 음식은 수제비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은 형상에 있어서 정성으로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수제비와 달리, 바쁜 현장상황에 의해 식당주인이 반죽을 즉각적으로 떼어 솥에 던져서 만들어졌기에 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조금 너덜너덜한 형태이었다. 그리고 명칭은 던지는 행위와 물 끓는 솥에 반죽이 물위로 떠있는 모습이 마치 목욕탕으로 보였던 대학생의 재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 대학생들은 그 명칭으로 음식을 주문하였고, 그 명칭은 칼국수집 주인에 의해 메뉴로 채택되었다. 이 음식의 특징은 수제비처럼 생겼지만 모양이 조금 다르고, 칼국수처럼 값이 싸지만 양은 더 많았다. 그리고 멀리서 반죽을 던져 탕(솥)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식 주인은 손님에게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이는 기존의 음식문화가 맛과 예절을 위주로 했던 입장에서, 놀이문화가 융합된 것이다. 
이렇게 던지기탕은 시대적 상황과 울산지역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탄생된 울산의 먹거리 문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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