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 앞에 놓이는 수많은 선택의 길
어느 길이 안전하고 성공인지 고민 한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걸음
때론 감정이 이끄는 길로 ‘용기’ 내 가보자

홍운기  UNIST 경영학부 교수

일리노이 대학에 방문 교수로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다. 보통 오전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고 대학도서관에 오전 8시면 자리를 잡고 앉아 연구를 하고 책을 쓴다. 학교가 커서 각 단과대학별 도서관이 제법 많다. 학생 기숙사에도 도서관이 있다.

나는 보통 학부도서관(UGL: Undergraduate Library)의 가장 조용한 장소를 주로 이용한다. 학부생들 중심으로 돼있는 도서관이라 다양한 보드게임뿐만 아니라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등의 게임기도 대여가 가능하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나씩 보드게임을 대여해 집으로 가지고 간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보드게임을 빌려오는 임무를 수행한 대가로 아이들이 엄마와 보드게임을 할 때에 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드게임은 구성물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도서관에서는 보드게임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적어놓은 코팅된 종이를 보드게임 박스 안에다 넣어둔다. 반납할 때에 제대로 확인하라는 뜻이다. 한번은 콜트익스프레스(Colt Express)게임을 즐긴 후 반납하기 위해 구성물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게임에 필요한 아주 작은 부속품 한 개가 없어진 것이다.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반납할 때 부속품 한 개가 없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아이들은 내 계정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앞으로 보드게임을 빌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 노심초사 했다.

너무 작은 부속품이라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서관 측도 모를 것 같았다. 애초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영어로 자초지정을 설명하려니 머리가 지끈 아팠다. 정말로 블랙리스트가 될지도 몰랐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반납해야 하는 이유가 계속 떠올랐다. 만약 집에 왔을 때, 아이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얼마 전에 읽었던 책 ‘희망 버리기 기술’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 이성과 감정에 대한 놀라운 주장을 한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운전석에는 ‘감정’이 타고 있단다. 아무리 이성적 생각과 판단을 해도 결국 행동으로 이끄는 것은 감정이다. 이성은 조수석에 앉아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보드게임의 부속품이 없어졌다고 솔직히 이야기할까, 그냥 반납할까? 나의 이성은 다양한 조언을 해댔다. 나는 행동해야 했고, 행동에는 감정이 필요했다. 나는 나의 감정 중에서 ‘용기’라는 것을 꺼내 사용하기로 했다. 용기를 내서 솔직히 이야기하자! 그 뒤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으면 처리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야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드게임 부품이 없어진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에 무슨 용기까지 들먹이느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느껴진다. 별거 아닌 일로 잠시 고민을 했던 내가 우습기까지 하다.

회사를 그만 둘까 말까? 물건을 살까 말까? 결혼을 할까 말까? 이성은 우리 앞에 놓인 옵션들의 장단점을 철저하게 분석해준다. 하지만 이성적 분석이 우리를 선택의 길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때로 우리는 이성적 분석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감정에 휘말려서가 아니다. 애초에 감정이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행동으로 이끄는 것은, 용기, 사랑, 정의, 공감 혹은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감정이다.

종종 학생들이 진로 상담을 위해 찾아온다. 대학원에 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나는 대학원으로 진학했을 때의 장단점, 취업했을 때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준다. 물론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들은 뭔가 새로운 정보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을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또한 여전히 내 삶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더 안전한지, 더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 따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운전석 앉아야 할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고, 조수석의 이성만 조잘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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