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하지만 빛나던 그녀
자신의 이야기 담은 책 만들어
세상 어떠한 책보다 가장 값져

이동우 한국언론진흥재단·작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사서. 그녀의 직업이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 그날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담장의 붉은 장미 꽃잎이 전날 내린 빗방울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던 그런 날이었다.

오래된 봉고차를 몰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녀는 도서관 입구의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얼굴의 근육은 일부분이 일그러져 있었고 보행을 도와주는 보조 워커를 신고 있었다. 그녀의 발과 종아리, 무릎과 허벅지를 워커가 지탱해 주고 있었다. “워커를 신으면 그래도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대출됐다가 반납된 책을 책장에 꽃아 두는 일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장미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까이에 있는 곳이지만 한 번 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장미공원에 가는 일 조차 그녀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장미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차장은 협소했다. 주차할 장소를 찾기 위해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장애인 주차장은 그곳에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워커를 신고 지팡이로 몸을 의지한 채 느리게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그녀의 다리가 비틀거렸다. 혼자 갈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장미공원이 한 눈에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색색의 장미들이 가득했다. 백 만 송이의 장미가 뿜어내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다.
“겨울이 제일 힘들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는 말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미리 택시를 부르지만 택시가 제 시간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도서관, 난방도 끊어진 그곳에서 홀로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힘들다고 그녀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지탱해준 사람들의 이야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해 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아요.”

편하게 써보라고 했다. 잘 쓰려고 하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도 했다. 화려한 글보다 솔직하고 진솔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했다. 글은 몇 번이고 고쳐서 쓸 수 있으니 일단 써보라고 했다. 글을 써서 보내주면 조금 도움을 줄 수 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메일을 보내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시험기간이면 시험지를 읽어내기 힘들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은 그녀를 위해 큰 글씨로 볼 수 있도록 시험지를 몇 장으로 나눠 복사해 주던 담임 선생님 이야기, 대학시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돼 주었던 친구 이야기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씩 책으로 완성돼 갔다. 책이 완성되면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을 찾아가 나눠줄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서울나들이를 한 번 도 못해 보았다고 했다. 서울을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책이 완성되기 전에 그녀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차를 끌고 집으로 데리러 가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지하철을 타면 얼마든지 혼자 갈 수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시청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왔다.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찾아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 넓은 시청역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구석진 곳에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턱이 없는 횡당보도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덕수궁도 청계천도 장애인이 다니기엔 너무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즐거워했다. 덕수궁 뒤뜰의 단풍이 그녀를 매료 시켰다.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층 피자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청계천의 풍경은 그녀를 흥분시켰다. 그녀는 피자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녀의 책이 완성된 건 다음해 봄이다. 그녀는 완성된 책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표지의 디자인이 그녀의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프린트를 하고 스프링으로 제본을 해서 펴낸 독립출판이었지만 그녀의 책은 세상의 그 어떤 책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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