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치 못한 화재에 쫓겨 집을 떠난 이들은 ‘불안’의 밤이었다. 지난 19일 오후 1시 51분께 시작된 울산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산불에 그 일대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초속 20m 강풍을 타고 빠르게 확산된 불길에 주민들은 시내 친인척집으로, 친구네로, 숙박시설로 황급히 대피했다. 기나긴 어둠을 버틴 뒤 동이 트자 쌍용하나빌리지 아파트와 상정·화정마을 등 곳곳에는 밤새 ‘화마’(火魔)와 싸운 흔적이 역력했다.
#1,800세대 아파트 뒤덮은 연기…잠 못 이룬 주민들 = “통장이랑 휴대폰만 챙겨서 무작정 남구 쪽으로 나갔어요. 가족들이랑 빨리 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20일 오전 청량읍 삼정리 쌍용하나빌리지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주민 김미희(58·여) 씨의 말이다. 불길이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대피 준비한 그는 “시내로 대피하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에 너무 놀라서 집에 있는 가족들과 무작정 나왔다”며 “아파트 단지 내 매캐한 냄새가 가득해 기침 나고, 연기로 시야는 가로막히니깐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김 씨는 지난 밤 가족들과 삼산동 한 호텔에 머물렀다. 호텔 프론트 앞에는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20여명의 손님들이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캐리어는 기본이고, 집에서 챙겨온 과일과 간식거리 등을 손에 쥐고 있었다”며 “다들 상기되고 피곤한 표정이었는데, 상황이 궁금한 다른 가족들과 지인들의 전화를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여파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다중이용시설 사용을 최대한 기피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며 “바이러스에, 산불에 이중고로 마음이 무겁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날 밤 9시께 옷가지를 챙기러 잠시 들린 아파트 단지 내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파트 곳곳에는 잔불 처리를 위한 삽과 갈고리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소방관들과 관계자들은 1~3단지까지 계속 순찰하며 천막 상황실 등을 통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공무원들은 아직 불 켜진 집을 일일이 방문해 즉시 대피할 것을 거듭 권고했고, 필요한 물품을 챙기러 잠시 귀가하는 차량들로 지상주차장 등이 혼잡스럽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어른들은 더 힘든 밤이었다…“미안하고, 고맙다”= 쌍용하나빌리지와 직선거리로 3km가량 떨어진 청량읍 삼정리 상정마을과 덕하리 화정마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매서운 바람에 따라 불이 두 마을 인근 산에도 옮겨 붙자, 주민들은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닭 등 가축들부터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날 상정마을은 전날 가득했던 매캐한 냄새는 줄어들고, 맛있는 국밥과 커피 냄새가 났다. 밤새 불과 싸우며 추위에 떤 소방관과 경찰관들을 위해 주민들이 준비해온 따뜻한 마음이었다. 아직 현장에는 잔불 작업이 한창이다.
임규택(75·남) 상정경로당 회장은 “150여명의 어른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어서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고령자들은 주변 여관으로 가거나 일부는 친척집으로 갔고, 상황이 여의치 않은 20여명은 임시 개방된 경로당에서 잠 한숨 못자고 있었다”며 “그래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줘서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고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역시나 시내로 긴급 대피했던 화정마을 주민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왔다. 임태주(70) 화정경로당 회장은 “다행히 화재로 인한 피해가 없어서 안심이고,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없어 감사하다”며 “101세대 200여명 주민들 모두 밤새 불이 빨리 꺼지길 바라며 밤을 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