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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천전리 각석의 어린왕자, 지금은 어느 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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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보경 울산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 승인 2020.03.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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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족들이 새겨놓은 추명 속 어린왕자
일곱 살에 왕 위에 오른 정복 군주 ‘진흥왕’
옛 신라의 역사 담은 ‘금석문’ 후대에 남겨

 

허보경 울산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그 의미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통해 미래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역사 문화 유적지를 방문해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좀 더 폭넓게 찾아보면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한층 더해질 것이다. 오늘은 우리 지역의 역사 유적지들 중에 천전리 각석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울주 천전리 각석에는 흥미로운 어린왕자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천전리 각석이 국보 제147호로 지정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 중에 하나는 각석 아랫부분에 신라 왕족들이 새겨놓은 글 덕분이었다.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 양쪽으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은 을사(乙巳)라는 간지(干支)를 통해 525년(법흥왕 12)에 새긴 것으로 보아 원명(原銘)이라 부르고, 왼쪽은 기미년(己未年)이라는 간지를 통해 539년(법흥왕 26)에 새긴 것으로 추정해 추명(追銘)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추명에 후일 진흥왕이 된 신라의 어린왕자가 나온다.

추명의 내용을 해석해 보면, 과거 원명을 남기고 갔던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사부지 갈문왕(徙夫智葛文王)이 돌아가신 후 그를 그리워하던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여섯 살의 어린왕자였던 심맥부지(深麥夫智)를 데리고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때 어린왕자는 천전리 각석에 글을 새기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아들이 없던 법흥왕의 조카이자 외손자였던 어린왕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으로 그 다음해 일곱 살에 왕위에 올랐다. 10여년간의 섭정(攝政)을 거친 후 551년(진흥왕 12)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를 선포했다. 어린왕자의 이후 여정을 금석문(金石文)등을 통해 알아보려 한다.

어린왕자에서 서서히 활발한 정복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진흥왕(眞興王)은 신하들에게 명해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단양)산성을 차지한 551년에 단양 신라 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 국보 제198호)를 세웠다. 이 비는 고구려의 영토를 차지한 것을 기념하고 관련된 신하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건립한 최초의 신라(新羅) 석비(石碑)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불세출의 정복 군주다운 면모를 보이며 진흥왕은 순수비(巡狩碑)를 잇달아 건립하는데, 순수란 왕이 직접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을 뜻한다. 555년(진흥왕 16)에 세운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는 지역을 보호하고 북진(통일)을 하늘에 맹세한다는 뜻에서 세운 것이다. 561년에는 이사부에 명해대가야(大伽倻)를 정복하게 했고, 같은 해에 창녕비(국보 제33호)를 세웠는데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관련된 사람들이 열거돼 있는데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글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라 하기도 한다. 북한에 있는 황초령비(함흥, 국보 제110호)와 마운령비(이원, 국보  제111호)는 진흥왕이 568년에 함경도 지역을 정복한 뒤 민심을 수습하고 국경을 안정화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그는 역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 거칠부에게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게 했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한 뒤 함경도까지 그의 발자취를 남겼다. 황룡사를 짓고 불교 교단을 정비해 사상적 통합을 도모하였고 국가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을 위해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신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후 576년(진흥왕 37) 하늘로 돌아갔다.

천전리각석을 다녀간 어린왕자가 남긴 여러 금석문들은 이제 국보가 돼 옛 신라의 역사를 알려주는 훌륭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진흥왕이 급변하는 삼국 관계 속에서 강력한 왕권을 발휘해 정복 군주가 됐고, 대내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신라 중흥의 군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의 큰 획을 긋고 사라져간 천전리의 어린왕자는 이제 밤하늘의 찬란한 별이 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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