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길 주필

루스벨트 대통령의 1930년대 ‘뉴딜’정책
일관성 없고 항상 능률적이진 못했지만
미국을 세계 최고 국가로 재건 성공

세금만 퍼붓는 ‘한국판 뉴딜’ 되면
경제 부흥이 아니라 정치 부흥 될수도
해고금지 특별법 등 특단조치 삼가해야

 

루스벨트가 미국민들에게 전혀 새로운 방식의 분배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1930년대 미국만화.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욕시 하이드파크 자택 현관에 서서 특유의 미소를 얼굴에 가득 짓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1936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밤이었다. 개표결과 압도적 승리가 거의 확정되자 뉴욕시 민주당원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 위해 재향군인회 악대를 앞세우고 환호성을 울리면서 몰려왔다.
루스벨트는 공화당 후보 알프레드 M. 렌던 캔사스주지사를 선거 사상 최대의 득표차로 전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와같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는, 미국 역사상 정부의 활동과 사회적, 경제적 대변혁을 다짐한 가장 광범위한 ‘뉴딜(New Deal)’ 정책에 대한 전폭적인 승인을 뜻하는 것이었다.
루스벨트가 1933년 32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들어갔을때 미국은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위기인 대공황에 직면해 있었다. 수천명이 아사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이 정부의 주임무는 세출을 세입범위내로 억제하는 것”이라는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정부는 곤궁한 국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억제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감이 모든 국민들을 휩싸고 있었고 헌법에 구현된 민주정체는 결국 실패로 끝난 듯이 보였다.
루스벨트는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미국민들에 대한 새로운 정책’, 즉 ‘가치기준의 근본적인 재평가’를 분명히 약속했다. 그는 이러한 실용주의적인 정신 아래 1933년 대통령의 첫 임기에 들어갔다.
이른바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즉각 실행에 옮겨졌다. 3월 4일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바로 그 자체”라고 선언한 루스벨트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해 싸울 수 있도록 광범위한 행정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의회도 이에 협력해 루스벨트 정부 출범 ‘100일’동안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혁신적 연방법규가 제정되었다.
뉴딜정책의 가장 즉각적인 효과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호에서 나타났다. 무엇보다 연방긴급구호국은 실업자에 대한 직접 재원 자금으로 5억달러를 각 주(州)에 풀었다.
농산물 가격하락과 과잉생산에 시달려 절망에 빠진 농민들에게는 연방보조금을 지급, 경작규모를 줄이고 판매 쿼터제를 실시하고 자금을 융자했다.
국가경제회복이라는 야심찬 국가산업부흥법에 따라 국가부흥국(NRA)이 공공 사업국(PWA)을 설치, 도로 및 주택건설 등 약 3만4,000건의 공공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제공했다. 소비자의 구매력을 증진시키는 한편 산업활동도 촉진시켯다.
‘뉴딜’의 초기 활동 중에는 무모하고 낭비적인 계획도 많았지만 그래도 정책의 성과는 나타나는 것 같았다.
1934년 봄이 되자 경제는 최악의 불황국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뉴딜’계획이 곧 생존화 새로운 희망이었던 미국인들은 활기찬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뭉쳤다.
1936년 재선된 선거결과는 ‘뉴딜’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입증했다. 동시에 루스벨트는 민주당이 과반수를 훨씬 넘어선 의회를 계속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딜’은 공황을 완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1938년에도 실업자는 여전히 약 1,000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 다음해부터 막대한 방위비가 지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뉴딜’은 일관성도 없었고 또 항상 능률적인 것도 못되었다. 그러나 ‘뉴딜’을 통해 성취된 업적은 엄청난 것이었고 또 장기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뉴딜’은 자본주의를 그 자체의 무절제에서 구축했다. 불황에 시달린 다른 나라들이 절망 속에서 전체주의 체제로 돌아섰을 때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유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대통령에 네번이나 당선된 루스벨트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뉴딜을 통해서 미국 정치사를 다시썼다. 뉴딜은 진보 30년 집권의 바탕이었다.
‘한국판 뉴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AI), 5G 기술을 기반으로한 인프라 구축사업이 중심이 된다. 정부는 “과거 토목사업 위주의 뉴딜과 차별화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책 대전환이 없으면 ‘다시 토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 민간 경기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국가 주도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기침체 탈출 효과를 동시에 거두겠다는 취지로 ‘뉴딜’이라는 성공 사례를 차용했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정부주도의 일자리 창출로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는 유권자 ‘동맹’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한국판 뉴딜 정책을 내놓은 문재인 정부의 ‘속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노동개혁, 규제개혁 등 구조 개혁 없이 세금만 퍼붓는 ‘한국판 뉴딜’은 경제 부흥이 아니라 정치 부흥으로 기울 수 있다.
실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 국책사업 등 공공사업을 일으켜야 한다. 단지 실업기반 확충에 우선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 스마트시티, 스마트도로 등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고용 유지를 위해서는 노사정이 합심해야겠지만, 해고금지특별법 같은 특단의 조치는 삼가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법제화가 절실하다. 차제에 고용관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노동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유럽국가들처럼 사업체가 아닌  소득자 중심의 고용보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전국민 고용보험 가능성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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