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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34년 만에 끝난 ‘살인의 추억’…피비린내·과학수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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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07.0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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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소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가 34년만에 종결됐다. 사진은 영화 포스터.영화 살인의 추억 공식홈페이지 제공

 

김병길 주필


토막 살인 현장 피비린내 안잊혀져
영구미제 직전 ‘화성연쇄살인사건’
우연한 제보로 증거물 재분석 결정적

이춘재 5년간 살인 14건 성범죄 9건
죄책감 못 느끼는 심각한 사이코패스
작은 수사 실수에 엉뚱한 사람 옥살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라는 말이 있다. 그 ‘피비린내’를 직접 느껴 봤다면 기억하기가 싫은것이 당연하다. 전장이 아니라 살인사건 취재현장에서의 피비린내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 초년병 시절 사건현장을 누비다 목격하고 겪어야 했던 피비린내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1970년대말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푸줏간 주인 이팔국의 아내 토막 살인사건은 비닐봉지에 담긴 토막난 시체가 곳곳에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시체를 토막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 수사단서가 되면서 지역내 푸줏간이 1차 수사대상으로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아내와 사이가 나빴던 창신동 푸줏간 주인 이팔국이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살해한 후 토막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취재중 이팔국이 아내를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냈다는 그의 집 목욕탕에 들어서자 말 그대로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자백했다는 사실은 통상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유죄 판결로 연결된다. 기자의 직감으로도 이팔국의 자백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피비린내였다.

영구미제로 끝날 것 같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34년만에 종결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일 어수선한 가운데 화성연쇄사건 종결뉴스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7월 2일 경기 남부경찰청은 피의자 이춘재(57)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종합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지난해 8월 이춘재 수사에 착수한 지 11개월 만이다.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시작했다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형 범죄자가 된 것”이라고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춘재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 자존감이 약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자신이 모는 탱크를 다른 탱크들이 뒤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과 우월감을 느꼈다.

수사본부장은 “평소 말이 없었지만 군대 시절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흥분된 상태였다”고 했다. 이춘재는 1986년 1월 전역 후 같은해 9월 15일 화성시 안녕리에서 이모씨(71·여)를 시작으로, 1991년 4월 3일까지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춘재는 살인을 거듭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범행수법도 가학적으로 진화했다. 사이코패스 심각도 검사를 한 결과 상위 65~85%로 나왔다. 하지만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돼 추가 범죄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 10차 범행은 2006년 4월에 공소시효가 끝났다. 2007년 늘어난 살인죄 공소시효 25년을 적용해도 시효가 지났다.

이춘재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배회하며 대상자를 물색하는 타입이었다. 비가 올 때는 더 했다. 당시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려면 긴 시골 논길을 걸어야 했던 경기 화성 지역은 그의 범행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비오는 날 시골길 살인현장이 그대로 연상된다.

2004~2006년 서울 서남부와 경기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도 비만 오면 지하철을 타고 아무역에서나 내려 대상자를 물색했다. 이들의 범죄 대상은 연약한 여성이었다. 성폭행으로 시작했으나 피해 여성의 반항을 제압하다가 살인으로 이어졌고 이후 더 가학적인 성욕을 드러냈다.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자 수사의 민낯도 드러났다. 이춘재는 이전에 세번이나 용의선상에 올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영구 미제로 끝날 것 같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전모는 우연한 계기로 밝혀졌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2019년 7월 부임하기전 경찰청 수사국장을 지낼 때 제보 하나를 받았다.

화성 연쇄살인범이 교도소에 수감중이라는 제보였다. 지목된 사람은 나중에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다시 증거물 분석을 의뢰한 것은 바로 그 제보 덕분이었다.

피해자들의 유류품을 범죄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존해 둔 것이 의도치 않은 신(神)의 한 수 였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났는데 DNA가 분석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분석을 맡긴지 약 한달 뒤 9차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분석 결과가 나와 모두 놀랐다. 유류품은 비닐이 아니라 종이 봉투에 담겨 보관됐는데 자동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면서 보존 상태가 뜻밖에 양호했다.

분석 결과를 수감중인 범죄자들의 DNA와 비교해 보니 별도의 처제 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으로 드러났다. 추궁 결과 화성 연쇄살인은 당초 10건에서 14건으로 늘었다.

1990년의 9차 사건 증거물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DNA가 범인을 찾아준 열쇠였다. 확실한 과학적 증거 앞에서는 희대의 살인마 이춘재도 범행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증거물에 남아 있는 이중나선 구조의 DNA를 반복적으로 분석해주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라는 유전자 증폭 기술이 범인의 정체를 밝혀줬다. 코로나19를 진단하는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술’에도 사용되는 생명공학 기술이다.

앞으로 과학수사는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다만 과학수사가 만능일 수는 없다. 증거 수집에서 분석과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과정을 사람이 진행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개입되면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특히 과학수사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의 무의식적인 ‘확증 편향’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니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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