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자 울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그것을 감추어도 반드시 드러나며
흉몽으로 생각하는 칼 맞는 꿈도 사실은 명예 얻는 길몽 뜻해
본인이 찔릴수 있더라도 하나쯤 갈고 닦는 것 괜찮은 것 같아

 

누군가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았다. 어둠 속에 희미한 그림자를 피해 빠르게 골목길로 들어가 돌담 밑에 몸을 숨겼다. 숨을 한숨 쉬기도 전에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두려운 마음도 잠깐이었다. 가까이 온 그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칼을 손에 들고 서 있는 남자는 나를 헤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반가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순간, 칼이 내 배를 비집고 들어왔다. 칼이 내 살을 뚫고 들어오자 피가 물총을 쏜 것 같았다. 피범벅이 된 그 남자는 칼을 빼더니 한 번 더 찔렀다. 쓱 들어오는 시퍼런 칼날이 느껴졌다. 칼을 빼려고 용을 쓰다 눈을 떴다.

며칠 전, 나와 관련된 소문 때문에 열흘 가까이 잠을 설쳤다. 주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을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이익보다는 주위를 더 신경 쓰고 배려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생활하면 다 알아주겠지 했다. 그것도 오만이었을까. 나와 상관없는 일에 휘말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갈 소문에 분노하는 내가 한심했다. 가십으로 떠도는 말이라며 마음을 편하게 갖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항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향해 휘둘렀던 채찍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화는 점점 더 커졌다.

그 무렵 ‘칼을 품다’라는 수필을 읽고 공감을 했었다. 특히 내가 존경하는 분이 칼을 품고 사신다고 생각하니 무슨 배짱인지 위로가 되었다. 나도 칼 하나쯤 품고 살아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주머니 속에 송곳이 아니라 칼이 스스로 드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열심히 갈고 닦아야지 했었다.

나와 관련된 말의 쓰레기를 다시 주워 모아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칼날을 갈았다. 칼날이 날카로워질수록 마음속의 분노는 커졌다. 시간이 지나자 화는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그나마 잘 살았다 생각했던 내 삶이 흔들렸다. 생각이 생각을 낳아 밤이면 칼을 갈았다. 이런 내가 불안했던지 남편은 나를 오백 년 된 노간주나무 분재 앞에 세웠다. 뿌리에 가까운 둥치는 내장이 터진 듯 갈라져 있었다. 반듯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몇 백 년 참아온 인내가 거친 표면과 상처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힘들었노라 처연히 모습으로 말했다. 좁은 화분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며 절제된 삶을 사는 분재 앞에 서서 더는 칼을 가는 일이 덧없게 느껴졌다.

꿈속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왜 나를 찔렀을까. 누구였는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반가웠었다. 반가워 다가갔는데 내게 칼을 꽂다니 꿈속 일이라지만 마음이 아렸다. 두 번의 칼이 들어온 배를 쓰다듬었다. 칼이 살을 가르던 순간이 다시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그 남자도 잠 못 드는 밤 칼을 갈고 있었을까.

꿈에서 깬 뒤 다시 잠들지 못했다. 쫓기던 어둠 속 골목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았다. 가슴에 품었던 칼을 다시 꺼내 되씹었다. 어쩌면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칼이 내 살을 파고들었던 것은 아닐까. 화도 삭았고 섭섭함에서 오는 서러움도 희미해졌다. 오백 년 동안 인내하며 산 노간주나무 분재도 불렀다. 나는 고작 오십 년 조금 더 산 것이 아닌가. 꿈에서지만, 칼에 맞았으니 이제는 나를 옥죄며 사는 것도 덜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새벽을 맞았다.

다음 날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는데 소속되어 있는 단체 카톡으로 코믹한 영상이 올라와 혼자 웃으며 듣고 있는데 꿈이 다시 생각났다. 살다 보니 칼 맞는 꿈을 꿨다며 안부를 전할 겸 문자로 찍어 보냈다. 그런데 바로 해몽이 날아왔다. 끔찍한 꿈이라 분명 흉몽일 것 같았던 내 짐작과는 달리 길몽이었다. 스트레스 해소와 사업이 번창하고 재물이 들어오는 꿈이라는 해석이었다. 꿈을 팔라는 권유까지 들어왔다.

언제 고민이 있었나 싶게 마음이 편해졌다.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칼이 오히려 길몽을 꾸게 한 것이 아닌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꿈이라니, 칼 하나쯤 갈고 닦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칼에 내가 찔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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