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재 화백의 그림은 희망의 속삭임 들려줘
연작 ‘연못’ 3,000년 전 옛 울산만 떠올리게해
울산만 수중 복원 필자의 꿈 미리 그려놓은 듯

임영재 화백의 그림을 보았을 때 추억이 떠오르고 희망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림 속엔 작가가 경험한 수천 개의 지정의(知情意)가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개가 필자의 심층에 있던 지식·정서·의지를 자극했다. 마음 한 구석이 들뜨는 느낌이었다. 전시된 10여점의 그림은 같은 형태를 보여줬는데, 그것은 겹겹이, 층층이, 올올이, 서리서리와 같은 형용을 떠올리게 했다.
이 그림을 보면 어부는 물결을, 농부는 밭고랑을, 광부는 지층을 연상할 것이다. 공감을 줄 가능성이 큰 까닭은 뭔가를 잔뜩 쌓아놓고 풀어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중첩의 기법이라 부르고 싶다. 널리 알려져 있는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처럼 점점이, 촘촘히 모은 작은 세포의 집합처럼 보였다.
‘첩첩히’나 ‘켜켜이’ 같은 말들이 생겨난 것은 우리 심상 속에 무언가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을 풀어내기가 수월치 않음을 뜻한다. 마치 우리 몸을 이룬 세포의 중첩과 같다. 한 개인은 30억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고, 그 세포 하나하나엔 우주적 경험이 축적돼 있다. 세포는 별의 탄생과 폭발로 생긴 수소, 산소, 질소 등의 결합체다. 그 결합체가 우리를 구성한다. 인간 삶의 단편들도 그 기억의 뭉치로 차곡차곡 쌓여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깊은 지층이나 심연에 가라앉아 있어 자극이 있을 때 드러날 뿐이다. 그 자극이 시와 음악과 그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환기는 사각세포의 중첩으로 자극했고, 임영재는 수평층리의 중첩으로 자극한다.
임 화백은 ‘Nest’(둥지)와 ‘Pond’(연못)란 이름의 연작을 그렸는데, 그 연작 속엔 대부분 수평층리가 있다. 지형탐사를 좋아하는 필자는 그 그림을 보면 기억의 퇴적암 속에 들어가게 된다. 노련한 광부, 즉 화가가 파 놓은 깊은 땅속에 들어가서 램프를 켜고 광석이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이윽고 작은 돋보기로 보석을 찾게 되는데, 그 보석은 우리 삶의 파편이자 기억이다.
임 화백 그림의 주된 색조는 연둣빛과 진홍색이어서 평온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그림 속의 지형은 거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고요한 정원, 아늑한 거실에 있는 상상의 지층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는 지층 속에서 파낸 것 같은 바라진 종잇조각이 그려져 있는데, 한참 들여다보면, ‘원래 망초보다 개망초가 훨씬 아름답다’고 판독되는 글도 있다. 어느 식물학자가 인공교배를 비판하는 메모 같기도 해서 공감이 된다. 읽기 어려운 글씨도 있다. 암호처럼 그려진 그 글발에서는 어느 시대 개혁자가 시대정신을 비판하는 은밀한 내용일 수도 있다. 필자도 그런 글 써 두고 싶다.
작가의 화폭에서 보이는 상징 가운데 어떤 것은 아주 현대적 삶의 흔적이 보인다. 쉼멜 피아노가 울리는 협주곡, 피지섬 비치파라솔의 쾌적한 한 때, 좋은 카페의 구수한 커피 등이다. 낚시와 천렵 장면도 있다. 소망을 자극하거나 행복했던 한때를 기억나게 한다.
‘Nest’ 연작은 정주(定住)의 소망이 서려있고, ‘Pond’ 연작은 안식을 추구하는 꿈이 보인다. 이 연작 속엔 새·물고기·수초 등이 주요 제재로 등장한다. 그것은 작가가 소망하는 삶의 정경이자,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필자는 ‘Pond’ 연작에서 수초 몇 포기를 찾으려고 했다. 몇 해 전 그의 그림 속에서 학창시절 경험한 인상과 비슷한 정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산청 경호강 강변의 움푹 꺼진 웅덩이 속에 자라던 수초가 햇빛에 일렁거리던 풍경에 감동했던 인상이었다. 물속에 수직으로 자라는 그 수초는 연둣빛이 고왔고, 수직으로 서 있는 모습이 의연했다. 순수했던 시절은 가고 아련한 잔영으로만 남아있던 그 인상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소망을 이루지는 못했다. 임 화백의 연못은 다른 생태계로 바뀌어 있었다.
그 생태계는 3,000년 전 고(古) 울산만을 떠올리게 했다. 토사로 메워지기 전 고대의 내만이 그려져 있고, 해초가 너풀거리며 커다란 물고기가 유영하고 있었다. 울산 남구와 중구의 50만 시민이 얹혀사는 태화강 강남북 지대는 3,000년 전 바다였다가 충적된 땅이다. 수심 30~40m에 이르던 내만이 퇴적되고 좁혀진 물길은 수심 2m 강줄기로 남아있다. 이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필자 소망과 직결된 것이었다. 필자는 고 울산만의 수중 풍경을 복원하는 꿈을 갖고 있다. 이 그림은 필자 꿈의 한 자락을 일찌감치 그려놓았던 것이었다. 필자의 추억과 소망을 볼 수 있는 풍경을 보러 전시장에 두 번 갔는데, 그때마다 고적했다.
(김한태 문화도시 울산포럼 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