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부터인가 우리 사회 당연시 된 셀프서비스
서구 스타일이 첨단 서비스인양 생각해 아쉬워
비용 더 지불하더라도 고객 대우 제대로 받아야

셀프서비스의 원조는 패스트푸드 맥도날드의 창업자 모리스,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라고 알려져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가져가고 다 먹고 난후 버리는 과정까지 모두 손님에게 맡기는 판매 방식을 말한다.
YTN 사장을 지내시고 지금은 내일신문 대표로 계시는 장명국님의 저서 ‘밥일꿈’에서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service(서비스)는 영어표기 이고 중국어로 생각해 보면 奉仕(봉사)에 가깝고 한국어로는 어떤 단어가 가장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한 끝에 찾아낸 단어가 ‘섬김’(섬기다)이 어울릴 것 같다는 내용의 글 이었다. 섬기다 - 신(神)이나 윗사람을 잘 모시어 받들다(국어사전) .
코로나 시대에 우리네 삶은 참 힘듦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습관처럼 식사 후의 한 잔의 커피가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찾는 순서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인지 큰길, 작은 길 할 것 없이 커피 매장들이 줄지어 들어 차 있는 것을 본다.
갑자기 무수한 커피 전문점들이 생겨나면서 매장 안 곳곳에 나부끼기 시작한 문구가 셀프서비스(self-service)이다.
음료의 종류가 너무 많아 때론 무엇을 먹고 마실까 고민 속에 겨우 찾아낸 메뉴를 계산대 앞에 가서 결제를 하고 돌아와 앉았다가 순서에 따라 울리는 벨 진동에 잠시 놀라 허둥대며 이번에는 내어 주는 곳으로 다가가서 이 사람, 저 사람 만지작거렸던 벨(진동기?)을 건네주고 쟁반 위의 음료가 쏟아지지 않도록 (왜 그리도 넘치도록 주시는지) 곡예사가 되어 자리로 돌아와서는 우아한 모습으로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고 난 후에 빈 컵과 버릴 휴지 등을 옆에 다른 이에게 방해되지 않게 모셔둔 쟁반에 담아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또 다른 선반 위에 모셔두고 난 후에 비로소 일터로 향한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오늘도 코로나의 그물을 뚫고 세 번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코로나 방역의 최우선 과제인 거리두기는 셀프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무색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셀프서비스라 해서 음료 가격이 더 싸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셀프로 드시면 커피 한잔을 3,000원에 드리고요, 갖다 드리면 서비스 요금 1,000원 포함하여 4,000원에 드립니다”란 문구가 그리워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
청년 실업이 하늘을 뚫을 듯 높아가는 이 때에 서비스 요금으로 전국의 대형 음료 매장에서 한 명씩의 서비스 직원을 채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럼 고객은 자리에 앉아서 서비스 직원에게 주문하고 결제하고 마시고 한다면 자리이동도 할 필요가 없고 뜨겁고 위험하기까지 한 음료를 들고 서성일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코로나 시대의 거리두기는 자연히 해소되면서 청년실업 문제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비스 하면 공짜, 덤, 무료 등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거저 얻는 것을 우린 생각한다. 거기에 덧붙여 순수 한글로 해석해본 섬김을 포함한다면 “저희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님께 섬기는 마음으로 테이블까지 갖다 드립니다” 정도도 부족할 터인데 “스스로 자신을 섬기시오”란 셀프서비스를 마주한 우리는 (테이블로 가져가다 쏟아져 지저분함과 뜨거움에 긴장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불편해 하면서도 1940년대 말 미국에서 맥도날드 형제의 상술비법(?)을 당연시 하며 받아들이고 서구 스타일의 첨단 서비스 형태인 양 생각하는 것은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쩌겠는가 !
어느 날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서 마신 컵을 그냥 놓아두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지인이 하는말 “가져다 줘야지” 하면서 당연하단 몸짓에 ‘그럼 서비스 요금 받아와’ 했더니 커피가격에 포함되어 있단다. 도대체 커피한잔의 원가는 알고 말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옛날식 다방이 그리워지는 건 꼰대(?) 이기 때문일까?
(최영진 노래샘 발행인·행복한노래교실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