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창문형에서 천장형까지 진화…인테리어 가구로 인식돼
‘전기 먹는 하마’에서 ‘에너지 절약형’으로 기술 발전할 것
사용자 체온·감정상태 파악하는 자동냉방 시스템 기대

흥미롭게도, 한국 최초의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석굴암이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단행된 석굴암 복원공사가 부실로 진행돼 생긴 결로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청와대에도 없던 에어컨을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가정용 에어컨은 1960년대 범양상선에서 일본 다이킨사의 에어컨을 수입판매하면서 한국에 등장했다. 같은 시기에 경원기계공업이 주한 미군부대의 고장난 에어컨을 수리해 판매하면서 ‘센츄리’라는 한국 최초의 에어컨 브랜드가 탄생했다. 1968년 금성사가 최초로 창문형 에어컨을 시판하면서 수입 위주의 에어컨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1980년대 벽걸이형 에어컨, 1994년 스탠드형 에이컨으로 진화한다. 특히, 스탠드형 에어컨은 냉방용 가전제품에서 거실 인테리어 가구로 인식돼 판매됐다. 스탠드형 에어컨은 아파트와 같이 획일화된 인테리어에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수요가 증가했지만,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만의 현상이었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2010년대에는 인공지능 에어컨, 2010년 중반부터는 천장형 에어컨의 대중화와 함께, 필터 청소를 스스로 해주는 로봇청소 에어컨도 출시됐다. 파생상품으로서 등장한 이동식 에어컨은 실내기와 실외기를 합친 제품으로 공장과 같이 밀폐되지 않아 냉기를 보존할 수 없는 공간에서 작업자들을 위한 개인용 에어컨이었다. 따라서, 가정이나 오피스 등 밀폐된 곳에서 사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공간 전체의 온도를 상승시켜 냉방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가정용 에어컨과는 달리, 상업용 에어컨이 가장 먼저 보급된 곳은 극장이었다. 1980년대 극장들은 ‘냉방완비’라는 배너를 입구에 붙여놓고 피서지 역할을 적극 홍보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해외여행은커녕 자동차보급율도 낮아 국내여행도 쉽지 않았던 시절, 극장 피서는 서민들의 멋진 휴가법이었다. 
미래의 에어컨은 어떤 모습일까? 기술적 측면과 사용자경험 측면으로 나눠 예상이 가능하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공기 냉각의 획기적인 신기술보다는 에어컨이 전세계 전기소비량의 10%를 차지하는 전기 먹는 하마라는 것을 고려할 때, 에너지를 절약하는 에어컨 기술 방향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대표적 에너지 절약 에어컨 기술로는 펠티어, 태양열, 마그네틱 냉각기술, 하이드로젤 기술들 언급되고 있다. 
펠티어 기술은 아직까지는 효율성이나 경제성 면에서 매력적이진 않지만 펠티어를 사용하면 전기의 공급 없이도 재료 표면의 온도 차이를 이용하여 실온 이하로 온도를 낮추는 것이 머지 않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태양열 기술은 열복사 원리를 활용하여 태양으로 부터의 열을 흡수하여 대부분을 빛으로 치환해 실외로 내보내면서 그 파생효과로 실내 기온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마그네틱 냉각기술은 공기 냉각을 위해 기존의 압축기와 냉매 대신 자석을 사용하는 원리로서 자기장에 내에 있을 때 자성물질은 가열되고 자기장이 제거되었을 때 그 물질이 냉각되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자기장 제어만을 통해 빠르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공기를 냉각시키는 에어컨이 가능하다고 하니, 현재의 에어컨 전기소비량을 고려하면 과히 혁신적이라고 불릴만하다. 하이드로젤 기술은 세라믹과 하이드로젤이 결합해 실내온도가 높아지면 하이드로젤에서 미세한 수분이 나오고 주변 기온을 떨어뜨리면서 다시 세라믹에 미세수분이 흡수되는 원리로 큰 전기소비 없이도 냉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위와 같이 에어컨에 직접 적용되는 기술 외에도, 빌딩 외장을 통한 공조 신기술로도 냉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스마트 머슬, 응답형 윈도우 패널이 언급되고 있다. 스마트 머슬 기술은 형상기억소재를 활용해 팽창했을 때 열을 발산하고, 수축했을 때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해 냉방을 가능하게 하는데, 머지않아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응답형 윈도우 패널은 빌딩 스킨을 인간의 피부처럼 만들어서 상황에 따라서 반응하고 대응하고 움직이는 빌딩 외장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전기에 덜 의존하면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냉매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전기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들을 적용한다면 현재의 전통적인 에어컨 구조와 형태 및 인터페이스 또한 혁신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사용자경험을 반영한 다양한 시도들 또한 차세대 에어컨의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고려될 것이다. 국내 모회사의 무풍 에어컨은 다양한 바람결을 디자인에 반영한 사례 중 하나의 옵션일 뿐이지만, 그 반향은 예상보다 크게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온도, 질감, 습도 등 사용자의 다양한 경험을 고려하면서 단순히 ‘강중약’풍을 벗어나 더 다양한 바람결의 디자인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색상과 이미지로 시원함을 느끼듯 시각정보과 바람결을 어떻게 매칭해야 새로운 바람 경험이 가능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골 평상에 누워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는데, 그때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다. 이 풍경의 경험이 디자인에 적용된다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신박함에 감동할 수도 있다. 또 덥고 추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처한 상황과 하는 일에 따라 기온의 체감이 달라질 수 있는데, 기온 경험의 다양성과 개인 맞춤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를 들면,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면 자연스럽게 체온이 올라가 에어컨이 켜져 있어도 더울 수 있다. 이때 에어컨이 사용자의 체온과 감정상태를 파악해 냉방을 자동으로 최적화할 수 있다면 감동 디자인이 될 것이다. 청소기 먼저가 덜 날리도록 에어컨 바람의 양과 방향을 자동으로 제어하고, 더 나아가 청소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먼지를 모아준다면 어떨까? 계절가전인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자바라 기능으로 스스로 소형화되거나 모양이 변해 거실의 새로운 오브제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전제품의 전통적인 정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들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이는 밭일을 한 뒤 후줄근한 큰 티셔츠를 입고 오이 콩국을 준비한다. 마루에서 매미소리 아래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오이콩국을 먹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여름의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고 있을 때면, 여름날 콘크리트 상자에 속에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한없이 처량해 보인다. 한여름에 엄마가 만들어준 수박화채처럼 시원하지만 보기도 좋고 맛있는 그런 에어컨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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