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죽은자는 말이 없다?…성범죄 2차 피해 막아야

 ‘울산판 도가니’ 교장 사망에 수사 사실상 종결…피해 규명할 길 없어
 시·교육청 “강제 조사권 없어·범죄 정황 드러나면 의뢰” 수사 미온적
 양금희 의원, ‘성범죄 피고소인·피의자 극단적 선택 후 조사 법안’ 발의
“의혹 제기 등 피해자 2차 가해 우려…‘입건 전 사망자’까지 확대 검토” 

 

‘죽은자는 말이 없다’ 이 때문일까?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수사받던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 지난해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그랬고, 한 로펌 대표의 초임변호사 성폭행 사건 역시 그렇게 마무리됐다.

결국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을 잃게 됐다. 심지어 가해자 혹은 가해 의혹을 받는 자들의 ‘죽음’이라는 선택은 피해자들을 ‘가해자’의 위치에 놓는 2차 피해까지 만들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밝혀 수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지난달 27일 장애인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울산의 한 장애인시설 학교 교장이 북구 한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교장은 시설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을 성폭행한 의혹으로 경잘 조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무려 1년 가까이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울산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다.

이로 인해 갑질 성폭력·성희롱 등에 대한 철저한 전수조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노옥희 교육감은 사과의 뜻을 밝히며 전수조사와 피해자 지원,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시설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울산시와 시교육청은 “강제 조사권이 없다”, “전수조사 과정에서 추가 피해 등 범죄 정황이 나타날 경우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의뢰 하겠다”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건을 수사하는 울산경찰청 역시 피해가 접수된 기관으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았지만 해당 교장이 피고소인이나 피고인도 아닌 신분이어서 결국엔 이대로 수사가 종결될 것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억울함을 막고자 양금희 국회의원을 필두로 박 전 시장 사건 이후인 지난해 7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고소가 있은 후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가 자살 등을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고소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고소사건이 처리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양 의원 등은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고소했음에도 피의자가 자살해 사건이 종결되면, 성범죄 사건의 진실이 묻힐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의혹 제기 등 2차 가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박 전 시장 사건이나 로펌 대표 사건은 당사자들이 공소권을 논할 수 있는 피고소인의 입장이었지만, 이번 울산 사건은 기관에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에서 교장이 사망해 피고소인의 신분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금희 의원 측은 “법안 공포 전에 상임위를 통해 성폭력 사건 수사의뢰 단계에서 사망한 조사 대상자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등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며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최대한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로펌 변호사 성폭행 사건이 이례적인 결론을 낳아 관심을 받고 있다. 공소권 없음으로 박 전 시장 사건과 비슷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이지만, 성폭력 사실이 묻히지 않은 점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수사를 맡은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지난달 21일 피의자의 사망에 따라 불송치 결정을 하고 9일 후 결정문을 피해자 측에 보냈다. 통상적으로는 ‘공소권 없음’ 한 줄만 적어보내기 마련인데, 4장 분량의 피의사실 요지와 불송치 이유를 적은 것이다. 경찰은 로펌 대표가 지난해 3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사무실과 법원을 오고 가는 차량에서 피해자에 대해 총 10회에 걸쳐 추행 및 간음을 저질렀다고 봤다.

한편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무고로 인한 억울함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최근 박 전시장 유족 측에서 지난 4월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것이 알려졌다. 또 지난 4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박 전 시장이 성추행했다는 취지의 SNS글을 썼다며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양측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결국엔 사건 당시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지 않아 발생한 사태로 봐야한다.

지역 장애인단체 한 관계자는 “피해자 혹은 억울한 가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보완을 거쳐 조속히 공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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