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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칼럼]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6> 냉장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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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1.10.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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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큰 김치통 가득했던 옛 냉장고 이제는 사라져
자취 시절, 엄마가 만든 반찬으로 채워지기도
물리적 박스 아닌 사랑 전하는 정신적 공간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도 김장 포기 가족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11월을 앞두고 가정마다 배추며 태양초 고춧가루, 젓갈 등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올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가 국민 거주형태로 대세가 된 지 오래되면서 냉장고 문을 열면 김장 김치들이 가득했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김치냉장고 덕분에 냉장고에서 큰 김치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첨단(?) 냉장고가 있기 전 나의 어린 시절 첫 냉장고는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였다. 지금의 청년층들에겐 ‘라떼’ 이야기겠지만, 시장 얼음가게에서 아이스박스용 얼음을 주문하면 아저씨가 자전거 짐받이에 큼직한 직육면체 얼음을 싣고 와 아이스박스에 넣어 주셨다. 그 얼음이라는 것이 여름에 금방 녹을 것 같이 보이지만 아이스박스 속에 넣어두면 그래도 3~4일 동안은 수박과 식혜를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큰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책장 속에 있다. 
전기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큰 냉장고가 부엌 쪽 마당 한켠을 차지했다. 한옥집이라 부엌은 안방과 연결돼 있지 않았고, 부엌은 석유곤로로 밥을 짓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라 냉장고는 부엌 바로 옆 마당에 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마당에서 놀 때면 언제든 시원한 보리차를 꺼내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그 시절 냉장고는 지금처럼 꽉 채워져 있지 않았다. 김치, 두부, 생선, 고기 같은 신선한 식자재가 다였고, 냉동실에는 얼음과 동그란 통에 든 아이스크림이 모두였다. 냉동만두, 반조리식품이나 밀키트는 그 시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단어들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아들 사찰로 올라오실 때면 김치며, 냉동된 사골곰국이며 불고기들을 힘들게 고속버스를 타고 손수 싸가지고 오셨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허기진 냉장고는 그것들로 하나둘씩 채워져 냉동실은 그들만의 차지였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와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녀석들은 몇개월 뒤 다시 엄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으면 슬프지만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돌이켜 보면 냉동실은 내게 그런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엄마가 차려 주는 밥상을 그리워하면서 엄마의 정성이 냉동된 그 녀석들은 왜 그렇게 돼야만 했을까? 아마도 냉동실에 있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고 해동하는 과정 또한 번거로워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연인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음식과 인간도 그러한 것 같다. 
집이 아닌 곳에서 냉장고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첫 직장에서의 탕비실이었던 것 같다. 탕비실 냉장고에는 탕비실이 음식을 요리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주로 직원들의 한약 봉지, 배즙, 드링크 음료들이 주로 보관돼 있었다. 한약과 배즙도 결혼 안한 직원들에겐 타지에서 직장생활로 고달픈 그들의 어머니가 챙겨 주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을 신선하게, 오래 보관하는 물리적 박스가 아닌 서로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정신적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의 아버지는 냉동창고를 운영하고 계셨고, 아내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면 냉동창고에서 들고 오신 갈비며 참치며 자주 먹기 힘든 음식들로 한상이 차려졌고 그날은 제대로 입이 호강하는 날이었다. 아파트만한 냉동창고에 국내 식품업체들을 위한 각종 식자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하시니 앞으로 아내와의 삶에서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로 갔다. 첫 집으로 구한 기차역 뒤 옥탑방에는 자그마한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 크기도 그 집만큼 작았다. 냉동실은 한뼘만 했고 무릎을 꿇고 마치 기도하듯 냉장고 안을 뒤져야 했다. 집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날이면 맥주를 둘 곳이 없어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나마 겨울이면 옥탑방 창문을 열어 눈 쌓인 지붕 한켠에 맥주병들을 쌓아두었던 추억도 있다. 어느 날 더치 친구는 자기 기숙사에 큰 냉장고 한대를 공유하고 있는데 어떤 도둑놈(하우스메이트)이 자기 식빵과 치즈를 훔쳐갔다며 분노하던 표정들 모두 냉장고에서 비롯된 이제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됐다. 
아이가 생기면서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그곳엔 방, 천장, 벽, 문, 창, 변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유롭지 않은 유학생활이었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우선 급한 가전제품들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입주 청소를 해야 하니 제일 먼저 청소기를 샀고, 아기의 옷을 자주 빨아야 하니 세탁기 그리고 잘 먹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 세식구가 먹고 살기에 여유로운 크기는 아니었지만 가성비 좋은 투도어 냉장고도 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가 아파트 1층에 들어왔고, 그 대형마트는 사실 우리에겐 엄청 큰 냉장고나 다름이 없었다. 요리를 준비할 때면 야채나 고기를 바로 내려가 손쉽게 들고 올 수 있었고 디저트 아이스크림도 비좁은 냉동실을 차지하는 대신 소화도 시킬 겸 내려가 사오곤 했다. 그 덕에 우리 세식구는 작은 냉장고로도 기나긴 유학생활을 잘 버틸 수 있었다.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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