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오늘날 스마트냉장고, 스텐딩 키친 스테이션으로 진화
인테리어 요소보다 삶의 가치 경험케하는 냉장고 필요
용도에 따라 재구성되는 냉장고가 주방의 중심 됐으면

 

1980년대부터 등장한 투도어 냉장고는 제빙기와 정수기가 달리고, 냉장실의 육중한 문을 열지 않아도 물이나 음료를 꺼낼 수 있는 홈바가 추가됐다. LG전자는 2010년 세계 최초로 매직스페이스라는 냉장고 내부의 별도 수납공간을 만들어, 자주 먹는 음료 등을 이곳에 보관하면서 육중한 냉장고 문 전체를 여닫는 횟수를 줄여 사용자의 물리적 그리고 전기요금이라는 경제적 부담을 확 줄여주는 혁신적인 시도도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3도어 혹은 4도어로 진화한 냉장고는 냉장과 냉동 위치를 사용자 마음대로 설정할 수도 있고 2중 구조의 도어와 LED 조명, 카메라,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타블렛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다. 냉장고 앞에서 음악도 듣고 웹서핑, 레시피 검색, 문자와 사진 확인 등 스탠딩 키친 스테이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 서서 무엇인가를 장시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사용자의 행동패턴을 이해한다면 덩치 큰 스탠딩 키친 스테이션으로서 냉장고의 새로운 기능들은 왠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빙고로서 냉장고의 기원을 돌이켜보면 주방 가전들의 기능들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오늘날의 냉장고는 왠지 과해 보인다. 엄마나 아내의 사랑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냉장고에게 단순히 많은 스마트 기능들로 채우는 것은 냉장고를 머리 좋은 바보로 만드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인테리어적 요소와 편리한 기능들에만 지나치게 치중돼 있는 수많은 냉장고들을 보고 있자면, 먹고 나누는 즐거움을 통해 삶의 가치를 경험케 하는 그런 의미적 경험을 전해주는 냉장고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최근 냉장고 문을 투명화해 냉장고 안을 문을 열지 않고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은 아주 흥미롭다. 하지만, 냉장고 속 식자재들이 구석구석 앞뒤로 무엇이 있는지는 결국 문을 열어 요리조리 물건들을 뒤적뒤적 해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현실을 고려할 때 투명 유리 기술보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식자재들의 양과 상태를 한눈에 흥미롭게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이 제공된다면 사용자들의 경험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빙고로서의 냉장고는 한알로 하루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알약과 같은 새로운 대체식품이 탄생하고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그 큰 덩치를 줄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신, 부피를 줄일 수 없다면 사용자의 다양한 경험들로 공간을 세분화한다면 전혀 새로운 냉장고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과일·채소·생선 이런 방식의 구분이 아니라 다이어트 식단처럼 단백질·섬유질·탄수화물·디저트 공간으로 말이다. 때로는 식자재의 색깔로 분류하고 보관할 수 있는, 때로는 상황에 따라, 혼자 있을 때, 함께 먹을 때, 파티할 때처럼 사용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식자재의 구성과 보관이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냉장고가 주방의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은 회원제 신선제품 매장인 ‘허마셴생’을 인수해 ‘냉장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슬로건 아래 신유통 실험모델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 속에서 주방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에 신선제품들을 보관하는 대신 신선제품 매장을 확장된 냉장고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육식이 이제는 빈자들을 위한 주식이 됐듯, 과거에 사치품이었던 냉장고가 가까운 미래에 빈자들을 위한 가전이 안 된다는 보장도 없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신선제품 유통 물류의 새로운 시도들을 이해하면서 기존의 냉장고를 소형화·특화해서 신선제품은 요리 전에 바로 픽업하거나 배송받고, 냉장고는 기존의 시원한 음료에 집중하고 주방 보조의 기능을 부여하면서 몸집을 줄여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히려 배송된 신선제품을 일시적으로 잠시 보관하는 방식의 개발이 현재 대동소이한 수많은 냉장고의 리디자인보다 미래에 훨씬 주목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릴러 영화 속에 등장하는 냉장고들은 음산한 긴장을 야기한다. 마치 살해된 시체나 장기의 일부분이 보관돼 있는 양 정부는 워라밸을 부르짖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회사생활은 스릴러처럼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런 스릴러 같은 일상에서 주방은 요리, 설거지, 그리고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노동의 공간임을 고려할 때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허연 덩치 큰 냉장고 대신 작지만 유쾌한 경험을 주고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빙고(氷庫)를 기대해보는 것은 지나친 빙고(Bingo)일까?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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