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10월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11월 23일)이 불과 28일 사이 각각 별세했으나 막상 묻힐 곳을 정하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별세 후 34일 만인 11월 29일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동화경도공원을 장지로 잡았다. 지난 27일 가족장을 치른 뒤 자택에 유골함을 안치 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고인의 뜻에 따라 “북녘땅이 바라보이는 전방 어느 고지”를 물색 중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는 군사정권 시절 실세들이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 그중 핵심 실세로 권력을 휘두른 ‘쓰리 허(許)’ 중 허화평씨도 보였다. ‘5공 설계자’로 불리던 허화평씨는 육사를 졸업한 뒤 신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에 속했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12·12 군사반란 획책에도 가담했다. 그러나 16·17대 총선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시고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허화평씨는 지난달 26일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는 유족 측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다. 
허화평씨와 같은 하나회 단짝으로 통하던 허삼수씨는 12·12 군사반란 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이었다. 그 역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 장례위원에 포함됐지만, 전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포착되지 않았다.
5공 핵심실세 ‘쓰리 허’ 중 또 한사람인 기자 출신 허문도씨는 1980년 신군부에 발탁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국토통일원 장관 등 요직을 누볐다. 특히 그는 언론 통폐합을 주도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그가 구상하고 시도한 언론 통폐합 조치는 수많은 해직 언론인을 양산했다. 신군부는 박정희 유신 정권의 기나긴 고난의 시대를 겪고 새 시대를 맞아 겨우 생기를 회복하려 했던 언론의 숨통을 조였다.
허문도가 앞장선 신군부는 ‘사회정화’라는 명분으로 언론사 통폐합에 나서 수백명의 기자가 쫓겨났으며 현직 언론인 구속도 마다하지 않았다. 군사정권을 주도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업보와 함께 ‘쓰리 허’가 남긴 상처가 여전히 잊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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