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기억상실증’이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세상이 오고 만다. 기억을 전부 잃어버린 사람은 과거와 동일한 사람일까. 한평생 경험한 일들이 쌓여 정체성이 형성된다면 기억을 잃었을 때 정체성은 함께 사라질까. 영화 ‘애플’은 기억상실증이 전염병처럼 유행한다는 기발하고 괴이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이름도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이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자신을 찾는 가족이나 친구가 나타나길 기다려보지만, 며칠이 지나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병원에선 무연고 환자가 된 주인공에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그는 자전거 타기부터 낯선 사람과 성관계를 갖기까지 일상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기록하는 미션을 받는다.
인간은 그야말로 기억의 산물이다.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국립과학연구원에서는 기존 거짓말탐지기와 달리 범죄 관련 자극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방식의 ‘기억탐지기’를 개발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억탐지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검사 대상자의 기억을 훑는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 21일 숨진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 “(성남시장)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어 2019년 대장동 개발 업적을 과장한 혐의로 재판 받을 때를 언급 “세부 내용을 재판 과정에서 파악하는 데 주로 알려줬던 사람이 이분”이라고 말해 의문을 증폭시켰다.
이 후보가 불과 6년 전 성남시장 시절 해외에서 자신을 포함해 11명이 9박 11일이나 함께하고, 사진도 여러장 찍었는데 어떻게 그를 기억 못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다 보니 이 후보가 ‘대장동 탈출’을 위해 선택적 기억으로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몰랐다” “측근이 아니다”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발언을 거듭할수록 무책임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만 커질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