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박사

유럽연합, 원전·재생에너지 모두 청정에너지로 인정
신재생 간헐성 보완할 수 있는 원전의 역할 명확해져
반드시 원전 포함한 에너지믹스 로드맵 재정립해야

 

언제부턴가 흰쌀과 밀가루, 흰설탕은 몸에 해로운 ‘삼백(三白) 식품’이라 해 웰빙 푸드의 적(敵)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라면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한다. 그러면 흰쌀과 밀가루, 흰설탕은 아예 없어도 좋은 식품인가? 무엇이든 지나친 것이 문제지, 식품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다. 제대로 알고, 되도록 먹지 않거나 적절한 양을 먹으면 된다. 무엇이든 잘 알고 적당히 섭취하면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다.
음식만이 아니다. 에너지도 비슷하다. 올겨울 추운 날씨로 인해 예년보다 많은 전력이 예상되자,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 가동을 늘리기로 했다. 임기 내내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현(現) 정부가 아니던가. 그런데 실제론 급할 때마다 원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대선 이후인 2분기부터 인상하기로 한 조치는 코미디에 가깝다. 겨울철 공공요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언제부터 계절까지 따져가며 공공요금 인상을 저울질했는지.
지난해 12월 원전발전량이 역대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겨울철 미세먼지 감축 정책으로 석탄발전을 줄여야 하는 데다가 일조량 감소로 태양광 발전량 또한 감소해 결국 원전에 전력 수급을 대폭 의존하게 된 것이다. 작년 매듭달의 원전발전량은 1만5,741GWh에 달했다. 지금까지 원전발전량 최대 기록은 지난 2015년 8월의 1만 5,088GWh였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6년여 만에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한 셈이다.
원전발전량이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이번 정부 들어 빠르게 늘고 있는 신재생 설비의 낮은 발전 효율이 우선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년간 늘어난 태양광발전은 설비 용량 기준 4.4GW 정도로 원전 4개 규모다. 하지만 발전량은 태양광설비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메우기 위해 원전 가동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다 전년에 비해 대폭 늘어난 전력 수요와 미세먼지 감축 정책에 따른 석탄발전 가동 제한 등도 원전발전량을 늘린 원인이다. 올겨울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도, 올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며 전기 과소비를 부추겼다는 점에서 원전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해 벽두에 유럽연합(EU)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모두 청정에너지로 인정했다. 그리고 이들 청정에너지에 대한 금융 투자 지원을 하는 녹색 분류체계(택소노미)를 공개했다. 이 발표 직전에 공개된 한국의 택소노미에서는 원전이 제외됐다. 아직 늦지 않았다. 빠르게 옥죄어오는 탄소중립 시대에 과연 원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진솔하게 돌아보자. 석탄발전을 줄이고 신재생발전 비중을 늘릴수록, 미세먼지 배출 없이 신재생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원전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졌다. 징검다리 에너지로서의 원전의 역할을 솔직히 인정하자. 지금까진 뜬구름 잡듯 책상에 앉아 연필로 스케치하는 수준이 아니던가. 원전의 색깔을 정확히 잡아야 에너지믹스와 넷제로의 뚜렷한 그림이 그려진다.
우리 민족은 주식인 쌀과 밀가루 없이 살 수 없다. 오랜 기간 짠맛에 길들여진 입맛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싱겁고 담백하게 먹으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탄소경제는 가고 수소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지구촌 공동의 과제다. 많은 국가가 안전하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값싼 청정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올인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난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파, 폭우 등 급격한 이상기후는 개인 삶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에너지 수급 위기까지 초래한다. 탄소중립 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소경제로의 이행에 더욱 고삐를 죌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드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믹스 로드맵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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