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하는 걸까? 어떤 중요한 것을 파손시킨 느낌. 난 또 그래 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했는데 난 또 그래 버렸다. 아프다”
300여일 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촉구를 주장하며 철탑농성을 벌였던 최병승씨는 7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귀를 올리고 철탑농성 해제 의사를 표했다. 장기간 철탑농성을 벌여 심신이 지쳤다고 밝힌 최 씨와 현대차 비정규직회의 천의봉씨는 296일만에 철탑고공농성을 끝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사내하청 노조)는 8일 오후 1시 부로 ‘송전철탑 고공 농성’을 해제한다고 7일 선언했다. 이날 지회 측은 ‘농성 해제’에 대한 논의를 벌여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주차장의 송전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여온 비정규직 출신 근로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지회 사무국장의 농성해제를 결정했다.
지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장과 최병승 현대차지부 조합원의 철탑농성으로 우리 사회에 ‘불법파견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라며 “철탑농성은 불법파견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각인시켰고,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기업의 면모도 보여줬다”고 밝혔다.
지회 측은 “약 300일간 장기 농성으로 천씨는 누워 있기도 힘들만큼 허리와 다리의 건강이 악화했고, 최씨도 심신이 극한으로 내몰렸다”면서 “그러나 이들의 농성으로 지회 조합원은 소중한 동지애와 자신감을 확인했고, 노동자와 시민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천씨와 최씨는 철탑을 내려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경찰에 출두할 예정이다.
두 농성자는 지난해 10월 17일부터 ‘현대차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최고 높이 50m의 송전철탑 23m 지점의 난간 천막 등 시설물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 측은 ‘사내하청 근로자 3,500명의 신규채용안’을 제시했지만 ‘직접 생산공정과 관련한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노조 추산 7,500명)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는 지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 진전 없이 농성이 장기화되자 지난달 20일에는 ‘희망버스’ 행사가 열리며 회사측과 충돌해 시위대, 사측, 경찰 등 100여명이 다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는 철탑농성 해제와 관련해 “늦었지만 철탑 농성 해제를 다행으로 생각하며 그동안 죽봉시위, 버스 폭력시위 등으로 중단된 특별협의가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 측은 비정규직 고공농성 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렸다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수차례 담화문, 사내소식지 등을 통해 ‘사내하청 문제는 정치권이나 외부세력이 아닌 노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사내하청 문제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며 농성 해제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렇다고 아직 비정규직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노사는 유일한 대화 창구인 ‘특별협의(불법파견 특별교섭)’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농성 해제로 인해 특별협의가 잘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었던 ‘철탑농성’이 해제돼 노사 협상에서 노조 측이 다소 밀리는 형국이 된다면 문제해결이 다시 요원해질 가능성도 있다.
지역 노동계 전문가는 “두 농성자가 고공농성을 풀고 철탑을 내려온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며 “특히 이번달 말로 예정된 2차 희망버스 행사가 농성해제로 인해 울산에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외부세력이 지속적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 개입하면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어, 노사 스스로가 해결할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