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4 지방선거가 앞으로 꼭 9개월 남았다. 특히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秋夕)을 전후로 ‘선거 밑그림’이 그려질 것에 대비, 예비후보들의 얼굴 알리기가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울산광역시장 후보군에 대한 탐색전과 여론조사는 벌써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여야의 대통령후보와 정당이 공히 약속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는 아직도 국회에서 정식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7월 말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의원총회를 거치지 않아 확정됐다고 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서 민주당 눈치만을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의 의결까지 가기 이전에 새누리당이 정당공천폐지 반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서로가 공약폐기의 부담을 서로에게 전가하려는 꼼수를 두고 있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는 정당공천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면담 요청에도 묵묵부답이다. 지난달 29~30일에 열린 새누리당 의원연찬회에서 이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여기에 뜻이 있었다면 마땅히 공식의제로 채택, 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정당공천폐지 여부가 결정돼야 시도선관위가 선거구조정 등 기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더욱이 지방교육자치일몰제로 교육위원을 대체할 광역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는 등 지방선거 전반에 대한 손질이 필요해 시간은 한층 촉박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정쟁에만 함몰된 채 내년 지방선거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출마예상자들만 절도 모르고 시주를 다니는 꼴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 속내는 정당공천폐지라는 말이 물밑으로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정우택 의원 등 일부 최고위원들을 제하고도 대부분의 최고위원들이 여기에 동조 내지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 최고위원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정치개혁과는 무관하다. (정당공천제는) 반드시 유지돼야한다”며 “뜻 맞는 사람들을 규합 중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진보당 인사들의 내란음모 혐의가 드러나면서 정당공천폐지 논의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정치개혁을 논의할 틈이 없다. 이달 말 활동시한이 종료되는 국회정치쇄신특위도 개점휴업 상태다. 여야 간사들의 접촉도 없고, 소집 일정도 안 잡고 있다. 심지어 정치쇄신특위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새누리당에 파견돼 있는 수석전문위원도 최근 총리실로 복귀했다. 정치쇄신특위가 열리지 않는데 전문위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상태로 9월을 넘기면 정당공천제 폐지는 자연 용도폐기될 공산이 크다. 10월 중 20일간의 국정감사가 실시되고,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으로 국회는 숨 가쁘게 돌아가게 돼 있다. 정당공천폐지가 정치개혁의 첫 단추라고 목청을 높이던 때가 엊그제인데 정치권은 벌써 까맣게 잊고 있다. 국민만 또 바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