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근 편집국장

우리가 누군가와 무엇을 협의하려고 하면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갖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예측 불가능한 망둥이라면 사전지식 자체가 무의미하다. 현재 북한 상황이 바로 그 짝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 권력의 최고 실력자로 통했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최근 실각(失脚)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동안 장성택을 축으로 움직였던 북한 정부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특히 북한과 같은 폐쇄국가일수록 외부에 알려진 인물자료는 더욱 중요하다. 인물중심이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자유세계의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성택 실각은 김정은 체제 2년에 대한 사전지식을 전부 폐기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또 장성택 몰락 이후의 상황도 안개속이다.
기존의 실세를 숙청하고 다른 인물로 교체한다면 그 인물이 누구고,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린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 2년 동안 권력서열이 하루가 다르게 요동쳤다.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실세 7명이 대부분 보이지 않고 있다. 군 최고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이 차례로 밀려났고 이제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마저 퇴출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수집도 휴민트, 영상정보 등이 총망라돼야 한다. 하지만 미중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이를 제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북한을 상대하는 데 지치게 되고,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빠져드는 것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장성택의 실각이 이래서 국제사회에 던지는 충격이 크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정권 때만 해도 제한적이나마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 권력을 상징하는 인민무력부장이나 총참모장, 외무성부상 등 간판급 인물이 오랫동안 유지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직함의 인물들이 수시로 바뀌다보니 이름을 기억하기조차 힘겨울 판이다. 김정은이 1인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 같은 무리수를 두었는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즉 외부에서 북한의 정치이념과 관계없이 그나마 협상파트너로 인정했던 사람을 너무 쉽게 내쳤다는 점이다. 장성택을 대신할 인물이 누가 되든 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장구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 기간 동안 북한의 대외협상력은 빙하기를 맞게 되어 있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하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리비아를 42년 동안 철권통치 했던 카다피나 이집트 무바라크 등도 튀니지에서 시작된 일명 ‘재스민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주민감시체제를 운영했던 카다피도 결국 하수구에서 최후를 맞았다.
한 정부의 도덕성을 따지기 이전에 자국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정을 저지른 권력은 결코 온전할 수가 없다. 김정은이 현재 권력서열을 제 멋대로 뒤흔들면서 권력에 도취해 있을지는 모르지만 카다피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제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자국민을 도륙하면서 희희낙락하는 정권이 버티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는가. 북한 못지않은 아랍세계의 절대 권력자들이 무너진 것은 정보통신의 발달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북한의 정보통신 발달 역시 끝없는 감시와 검열에도 불구하고 재스민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수준에는 충분히 도달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권력서열에 관계없이 김정은에게 밉보이면 언제고 숙청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장성택의 추종세력이 1차 뇌관으로 등장할 개연성이 높다. 이어 현재 장(張)을 대신할 인물로 꼽히고 있는 최룡해 인민군총정치국장의 불안감도 정변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고모부이자 당과 군, 행정부의 전권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장(張)마저 토사구팽 되는 판이 아니던가. 반란은 측근의 총부리에서 나온다고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충견(忠犬)도 주인을 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북한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다툼도 북한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대 복병이다. 아직 공개처형과 숙청으로 정권안위를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부지 김정은과 함께 한반도운명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 처지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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