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매일UTV개국 1주년 특집 - ‘혁신형공공병원’ 시민들의 힘으로

(1) 11살 민혁이 이야기

“울산에서 출산한 것을 가장 후회해요”

박선경(42) 씨는 10여 년 전, 남편을 따라 만삭의 몸으로 울산에 이사 온 그 때를 가장 후회한다.

울산에 내려온 그 달, 첫 아이 민혁이가 태어났다. 100일도 되지 않은 민혁이가 시름시름 앓았을 때는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다.

선경 씨는 “울산에서 가장 큰 병원을 갔는데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을 했어요. 담당 의사가 한명인데 연수를 가서 당장 치료 할 수 없다더라고요. 부산이나 대구로 병원을 옮겨야하는데 대구가 빠르다고 해 경북대병원 중환자실에 갔어요.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한시가 급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치료만 받으면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민혁이는 급성폐렴으로 경기까지 일으켰다. 결국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뇌에 손상을 입었고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초기 대응만 잘 했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 말했다. 의료시설이 발달돼 있는 수도권에서 출산하지 않은 후회가 늘 발목을 잡았다.

올해 11살인 민혁이는 뇌병변 1급, 지적 1급의 중증 중복 장애인이다. 식사를 하는 기본적인 활동조차 불가능해 수술 후 부터 계속 재활치료와 정기적인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선경 씨는 스스로를 ‘재활난민’이라 말했다. 남편이 직장 다니는 동안 민혁이를 데리고 서울, 대전 등 타 지역으로 병원을 다닌 세월만 7년이 넘는다고. 병원에 입원을 하더라도 일정기간 지나면 퇴원을 해야 한다. 그럼 미리 다른 병원에 대기를 걸어놓고 퇴원할 때 연락 오는 병원으로 다시 입원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야말로 가족이 ‘난민’이었다.

선경 씨에게 울산에서 치료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갈 병원이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냥 두면 퇴행 속도가 매우 빨라 아이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때문에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해요. 무엇보다 어릴수록 재활 효과가 높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금쪽같았죠. 하지만 울산에서는 아이를 전문적으로 케어해 줄 병원이 전혀 없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으로 수 년 간 병원을 찾아다녔다고.

얼마 전 울산에서 한 곳 뿐이라 경쟁이 치열한 재활병원을 어렵사리 들어갔지만 몇 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부당한 방식을 항의했다 치료사와의 신뢰가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다. 결국 돈이 더 들더라도 민간 재활센터를 이용해야했다. 울산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때도 대기만 7개월을 했다고. 선경 씨는 환자를 앞에 두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지금까지 남편 월급 100만원이면 100만원 통째로 쏟아 붓고 전세 보증금도 전부 사용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치료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재활치료를 비롯해 보호 장구, 외래진료, 교통비 등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달에 100만원 가까이다. 교육청과 정부와 지자체에서 일정부분 지원을 해주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지금도 선경 씨는 민혁이의 외래진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공공병원은 이들과 같이 오랜 기간 병원을 다녀야하는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김현주 공공병원 설립 추진위원장은 “울산 시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의료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울산시, 의회, 정당, 국회의원,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울산에서 공공병원 설립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중앙정부를 설득해야한다”고 말했다.

울산은 전국 특·광역시 중 유일하게 공공종합병원이 없다. 이는 울산의 열악한 보건 의료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만 살펴봐도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통제 불능의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울산에서는 울산대병원이 유일하게 메르스 진료 병원으로 지정됐다. 당시 확진환자는 없었지만 관찰 대상자가 입원 중인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병원 측과의 마찰을 이유로 파업수순을 밟아 비난을 받았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노조는 임단협 교섭과 투쟁을 잠정 중단하고 메르스 극복에 동참하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 시켰다.

하지만 그 계기로 국가적 의료재난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공공의료시설이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뿐만 아니라 지진, 원전 사고 등 복합재난에 노출되어 있는 울산이 사설 의료기관 만으로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점도 동의했다. 이후 열악한 공공의료기관 실태를 꾸준히 알리고 국립병원 건립을 건의, 추진했지만 여전히 울산은 ‘공공의료 제로’ 상태다.

그동안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시설이 많은 울산에 산재환자가 늘어나자 지난 2003년부터 산재병원을 설립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울산지역 대선 공약으로 산재모 병원 설립을 채택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전임시장시절 행정력과 정치력을 쏟아 부었지만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종합평가(AHP) 점수가 0.5 이상을 얻어야 사업의 타당성이 인정되는데 0.304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산업재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모 병원 설립이 무산된 것이다.

지역 각계각층의 실망감은 컸다. 하지만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울산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 추진과 지원’을 약속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울산의 공공병원 건립 지원이 실현되면 복합재난 응급치료 및 재활 기능을 갖춰 의료도시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송철호 시장 역시 6.13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송 시장은 최근 지역 국회의원과의 정책소통간담회에서 “울산 공공병원 문제는 건강보험공단이 세브란스 병원에 위탁을 준 ‘일산형 공공병원’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지역 정치권에서 해당 정부부처를 설득할 수 있도록 잘 좀 도와 달라”고 밝힌 바 있다. 울산시의회는 지난 4일 국회를 찾아 이상헌 국회의원실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면담하고 울산 공공병원 설립 촉구 건의안과 서명부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공공병원 설립이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아직 아무것도 드릴 말씀이 없다. 병원 설립을 위한 기획연구를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정부를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익성만 저울질하고 울산시는 의욕만 앞선 채 무엇부터 해야할 지 우왕좌왕하는 동안 의료약자들의 애만 탈 뿐이다.

취재/촬영 및 편집 : 신섬미·김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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