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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당신은 부모입니까, 양육비 채무자입니까>1. 프롤로그 / 양육비 안주는 ‘나쁜 부모’ 신상공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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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부모는 혼인 상태와 관계없이 자녀가 성장하는 데 최적의 여건을 마련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현행 양육비이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모의 의무다.


하지만 최적의 여건은커녕, 최소한의 양육비와 교육 문제조차 외면하는 ‘나쁜 부모’들이 있다. 한부모 10명 중 7명은 양육비 지급 의무자로부터 단 한번도 양육비를 지급받은 적이 없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법에선 양육비를 ‘부모의 의무’라 쓰지만, 현실에선 ‘자녀의 생존권’으로 더 많이 읽힌다. 부모가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자녀는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본지는 양육비를 고의로 미지급하는 피부양 부모의 백태, 이로 인해 고통 받는 한부모가정의 피해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자녀부양은 부모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사회규범’이라는 인식이 안착되려면 국가가 공익적 영역에서 양육비 강제 수단을 어떻게 개선·보완해야하는지도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우리나라는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이행법)을 제정했다. 이후 5년이 경과했지만 양육비 지급은 이 법이 제정되기 전과 같은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한부모가족 실태>를 파악한 결과, 조사대상인 한부모 2,039명 중 양육비를 ‘한번도 받은 적 없다’가 73.1%, ‘최근에 받지 못했다’가 5.7%로 전체의 78.8%가 양육비를 지급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피해 아동 수는 국내에서 100만명이 넘었다.

현행법상 미지급된 양육비를 받기 위한 법적 절차는 ‘양육비 이행명령’이나 ‘직접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일시금지급명령’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판결을 받으려면 양육비 채권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다, 설령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양육비 채무자가 지급하지 않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주지 않고 버티는’ 사례가 다반사다.

양육비의 경우 ‘적시에, 정기적’으로 지급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자녀 양육과 경제활동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한부모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미성년 자녀에게로 돌아가면서 안정적인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양육비 미지급 분쟁 해결을 위해 2015년 3월,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권한이 제한적이어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이용한 경우조차 양육비를 지급 받은 비율이 2018년 기준 30%에 그쳤고, 이마저도 3개월 이상 지급이 지속된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쁜 부모들 신상정보 공개한 ‘배드파더스’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현실법에 경종을 울린 건 정부도, 입법기관도 아닌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배드 파더스(Bad Fathers)’라는 인터넷 사이트다. 2018년 7월 개설된 이 사이트는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에 대한 얼굴과 이름, 직장 등 신상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가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법적으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에게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대화로도, 법으로도 양육비 지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부모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을 공개했다.

사이트의 파장과 효과는 컸다. 신상공개 직전 단계인 사전통보 과정에서만 420여건의 미지급 문제가 해결됐고, 신상공개 이후 180건이 해결돼 모두 600여건이 해결됐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활동가 구본창 씨가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들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활동가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이 올라간 경우는 법원이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을 판결했는데도 이를 무시해 법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악성사례”라며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양육비만 즉시 지급되면 공개된 신상은 내린다”고 강조했다.

#신상공개, 명예훼손 vs 아동생존권 갈등
배드파더스는 공익적 목적을 강조했지만 개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불법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이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 5명이 활동가 구씨와 운영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2020년 1월 14일 열린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이후 활동가 구본창 씨와 공동변호인단 변호사들이 법원 입구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 vs “아니다, 공익적인 목적이다”라는 쟁점을 두고 충돌했다. 2020년 1월 14일 장장 15시간 넘게 이어진 결심 공판에선 국민배심원과 재판부가 만장일치로 구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실이 없고, 무엇보다 피고인의 활동이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고통 받는 다수의 양육자의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라고 봤다.

특히 양육비 채무 불이행은 일반 금전 채무 불이행과 다른 특수성이 있으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본인 스스로 명예 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했다고도 판단했다.

즉, 개인의 정보나 명예보다 자녀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점, 그리고 양육비가 사적 채무가 아닌 공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반면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고법 형사1부(재판장 노경필)는 재판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재판부는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헌 여부가 이 사건의 대전제가 된다고 판단,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에 대한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번 재판을 종결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숭인 강효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죄가 아직은 합헌이라는 결론이 난다해도, 이미 1심에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됐고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전원일치로 무죄판결이 난 사건 아니냐”고 반문한 뒤 “1심에서 국민 법감정에 맞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그 결과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기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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