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당신은 부모입니까, 양육비 채무자입니까②>

하루 3~4시간 쪽잠 자며 일해도 늘 부족한 양육비
상처 받는 아이들…양육비 미지급은 명백한 ‘아동 학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중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닐까.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별하다. 하지만 이 말들이 무색한 ‘나쁜 아빠’가 여기 있다. 

12년째 양육비 미지급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강서영(가명·48)씨와 세자매.

# 12년간 밀린 양육비 1억원...형편 어렵다더니 재혼해 새살림

강서영(가명·48)씨는 남편 주병욱(가명·47)씨와 결혼 생활 중 경제적 무능력과 외도, 도박 등을 참지 못하고 12년 전인 2008년 이혼했다. 두 사람은 ‘님’에서 ‘남’이 되었지만 마냥 ‘남’이 될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13살, 10살, 4살이 된 세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 당시 법원은 남편 주씨를 유책배우자로 인정했고 세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강씨에게 주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한 아이당 40만원씩 모두 120만원의 양육비를 매달 말일에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강씨는 이혼 후 현재까지 제대로 된 양육비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전남편은 강씨가 하루 3시간씩 쪽잠 자며 돈을 벌어 세 자매를 양육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형편이 어렵다”며 양육비 지급을 미뤘다. 그렇게 밀린 양육비가 1억5천만원이다. 양육비 줄 형편이 안 된다던  전남편은 그사이 재혼을 했고 슬하에 두 딸까지 뒀다.

천륜은 끊을 수 없다는데 전남편에게는 해당되지 않아보였다. 다섯 명의 딸을 두었지만 강씨가 양육 중인 세 자매에게는 지난 12년간 면접 교섭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하지 않는 등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남편은 자신의 SNS에 다른 두 딸과 여행을 다니며 찍은 다정한 사진을 올려 세 딸들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강서영(가명·48)씨는 퇴근 후 집에서 부업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강서영(가명·48)씨는 퇴근 후 집에서 부업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 전남편 빚 때문에 신불자 신세…양육비 달라하니 “너 돈 벌잖아”

강씨는 이혼 후 당장 돈을 벌어야 했지만 전남편의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그만큼 어려웠고, 결국 남자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던 용접을 시작했다.

“‘히팅직’을 맡아서 사다리 타고 8층 높이에 올라갔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그날로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애들 생각하면 차마 그만둘 수도 없고 미치겠더라고요. 진짜 피눈물 흘리면서 일 했어요.”

그나마 강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 안정된 곳으로 이직을 할 수 있었지만,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는 한창 크는 아이들 셋을 양육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새벽까지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3~4시간 쪽잠을 자며 일해도 총 수입은 250만원을 넘지 못했다.

들어오는 돈은 정해져 있지만 전남편이 떠넘긴 빚에 월세, 그리고 세 아이의 양육비까지, 나가는 돈은 늘 그 이상이었다. 빚을 써서 메꿔야 했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전화도 여러 번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 돈 벌잖아”라는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는 강 씨를 버티게 한 것은 세자매였다.

“새벽 3시에 지쳐서 집에 가면 베란다 구석에서 혼자 술 마시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애들 놔두고 죽을까, 넷이서 같이 죽을까 늘 생각 했어요. 그런데 애들 자는 모습 보면 또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애들 잘 때가 제일 맑고 예쁘잖아요. 그 모습 보면서 버텼어요.”

그렇게 흐른 세월이 10여 년. 어느덧 첫째와 둘째는 성인이, 막내는 중학생이 되었다. 강씨는 여전히 부업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다.

12년 째 세자매의 양육비를 받지 못한 강서영(가명·48)씨가 전남편의 거주지를 찾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거주지 앞 찾아가 “양육비 달라” 공개 시위

강씨에게 제일 아픈 손가락은 막내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막내는 지금까지 ‘아빠’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강씨는 “전남편은 막내가 4살 때 떨어져 눈에 밟힐 법도 한데 아이의 안부는커녕 이름 한 번 언급한 적 없어요. 이제는 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거예요”라며 씁쓸해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 대신 집안일과 동생 양육을 도맡아야했던 첫째와 둘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다. “잘못 태어나 고생만 하는 거 같고, 나 같은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훨씬 좋은 삶을 살았을 텐데…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상처만 주는 것 같아요. 공부 뒷바라지 제대로 못해준 게 제일 아쉬워요”라며 죄인이라도 된 냥 미안해했다.

다행히 친부의 외면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 자매는 잘 자라주고 있다.  가난하다고 꿈마저 가난할 순 없다. 그간 고된 노동으로 몸이 성하지 않은 강씨는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라도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전남편이 사는 거주지 앞으로 찾아가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남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형편 될 때 주겠다”며 미루는 것도 모자라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된 양육비를 깎아달라고 흥정까지 했다.

강 씨는 “인터뷰 출연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양육자들이 얼마나 힘들 게 사는 지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양육비에는 우리 아이들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라는 점을 전달하고 싶어 용기 냈다”고 말했다. 

딸들은 12년 내내 자신들을 외면한 주씨를 ‘그사람’이라고 불렀다. 
아래는 첫째 딸(24)과 둘째 딸(21)의 인터뷰 내용

"‘그 사람’은 돈이 없어 양육비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주말마다 10시간씩 뷔페에서 알바를 해서 한 달에 30~40만원씩 벌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어른이쟎아요. 어떻게 그만한 돈도 없는지 의문이에요. 그렇게 형편이 어려운데 재혼은 어떻게 했으며, 자식은 또 어떻게 둘씩이나 더 낳았는 지 묻고 싶어요. 본인 먹을 거 다 먹고, 여행다닐 거 다 다니면서 보내줄 양육비가 없다고 말하는 건 그냥 주기 싫다는 거잖아요. 돈 없다는 건 핑계예요.

그동안 엄마는 혼자서 우리를 키우면서 하루라도 일을 쉰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우울증도 걸렸어요. 그 생각하면 아빠라는 사람한테 너무 화가 나요. 이렇게 낳아서 버리고 갈 거면 낳지를 말든가요.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미안하다면 이제라도 밀린 양육비를 갚았으면 좋겠어요. 막내도 아직 학생이고, 저도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거 참기만 하다가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볼까 해요. 그 시작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아빠라면요.”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강서영 씨와 세 자매의 풀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 ‘울산매일 UTV’ 채널(https://youtu.be/aCaudSV0MVU) 울산매일신문 홈페이지(www.iusm.co.kr)에서 확인할  있다.

※본 기획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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