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 아프리카민요 내 눈에는 다래끼가 났는데 악어란 놈이 내 다리를 잘라 먹었네 마당에 있는 염소란 놈 풀을 먹여야 할 텐데 솥 속에는 멧돼지 구이가 끓고 있구나 돌절구통 속 곡식은 말라빠지고 있는데 임금님은 나더러 재판 받으
나팔꽃 장철문 꽃도 해가 지니까 나팔을 챙겨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소리는 그냥 자기 그래서 가만 가만 땅거미를 데리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서 먼 산까지 가서 메아리도 치고 온다 -계간『동시발전
보름달 이장근 송편이랑 부침개랑 대추랑 밤이랑 사과랑 둘러앉은 친척들이랑 추석은 동그라니 잔치예요 하늘도 빠질 수 있나요 노릇노릇 달 부침개 커다랗게 부쳐 놓았죠 ―이장근 동시집 (푸른책들, 2011)
둘이는 성명진 소가 앞서고 할아버지가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디쯤에선가 멈춰 친구처럼 다정히 쉽니다. 할아버지가 무어라 말하고 소가 고갯짓을 합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이
용감한 풀들 함민복 날카롭게 간 낫을 든 농부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밭둑에 서서 한마디합니다 이제부터 풀들과의 전쟁만 남았구나! 이 말을 들은 푸른 풀들이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꼭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
누군가 해야만 해 쉘 실버스타인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 별들을 닦아야 해. 별들이 좀 침침해 보이잖니.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 별들을 닦아야 해. 독수리와 찌르레기와 갈매기가 빛바래고 낡아빠진 별들에 불만이
야생 장미 울라브 하우게 꽃노래는 많으니 나는 가시를 노래합니다. 뿌리도 노래합니다― 뿌리가 여윈 소녀의 손처럼 얼마나 바위를 열심히 붙잡고 있는지요 ― 울라브 하우게,『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봄날의 책
메르치젓 정형일 자 메르치젓 담으시소 메르치젓 시잉싱한 메르치 담으시소 메르치젓 자 메르치젓 담으시소 메르치 시잉싱한 메르치젓 담으시소 메르치 메르치젓 담으이소 메르치젓 시잉싱한 메르치젓 마이 담아 드립니더 트럭 한 대가 골목 귓구멍마다 갯내음 흠뻑 쏟아 놓고 갔다. 『향기 엘리베이터』 (푸른책들, 2011) ◆감상 노트 오월 우리 동네 명난로 대표곡도 저 이었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불국사에서 싱싱한 계란이 왔습니다” 과 맞붙는 에 귀가 즐거웠다.
뻐꾸기 소묘 박영식 앵둣빛 산 마음을 퍼담아 내는 뻐꾸기 물바람 낮은 목청 꺼질 듯이 돋아나고 내 둘레 헐리는 자리 울먹이며 오는 낮달 -박영식 시조집『편편산조』(책만드는집, 2020) 시인의 친필사인이 든 시조집『편편산조
빨랫줄 김용택 몸뻬 하나 때 지난 샤쓰 하나 팬티 하나 빨래집게에 물려 하루 종일 봄바람에 나부낀다. -『할머니의 힘』 (문학동네, 2012) ◆감상 노트 봄바람에 빨래를 너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게 시골집 울타리일 때 재미는 갑절이다. 어디 몸뻬, 팬티만 널리겠는가. 개나리꽃에 참새까지 널리면 진짜배기 봄 빨랫줄이 되는 거다. 우당탕탕 문짝이란 문짝은 다 열어젖힌 봄바람이 빨래를 그냥 둘 리 만무하다. 우룩부룩 울타리를 떠받고 달려드는 바람에 놀란 참새 떼가 돌멩이처럼 흩어지고 돌아
맨 먼저 핀 꽃 요 며칠 새 시냇가엔 붉은 버들개지에 이어 수많은 노란 꽃들이 황금빛 눈을 떴다. 오래전 순진무구함을 잃어버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삶의 황금빛 아침에 대한 추억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꽃눈으로 날 응시한다. 꽃을 꺾으러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한 늙은 남자는 집으로 돌아간다. -『헤르만 헤세 시집』(보물창고, 2015) ◆감상 노트 수년째 헤세의 시집을 곁에 두고 뒤적대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느낌을 써보려 한다. 봄 시냇가에 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