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보경 前 울산문화관광해설사회장
허보경 前 울산문화관광해설사회장

 ‘차와 옹기-옹기 속에 핀 조선의 차’라는 특별기획전이 울산옹기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기획전은 옹기축제로 예정된 5월 7일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조선의 차 문화와 차의 종류, 옹기로 된 차 도구, 그리고 몇 분의 다인(茶人)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강진으로 유배 간 뒤, 1805년 동백꽃으로 유명한 백련사의 혜장선사(惠藏禪師, 1772~1811)로부터 차를 배웠다. 해남 대흥사의 혜장선사 비문엔 ‘44세의 다산이 34세의 혜장을 처음 찾아가 밤새 차를 마시며 옥구슬 구르듯 계곡물 흐르듯 막힘없이 주역을 풀어냈고, 그에 답하는 다산의 학문 깊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산과 혜장은 이렇게 서로 다우(茶友)가 됐다. 혜장은 어린 찻잎으로 뛰어난 제다(製茶) 과정을 거친 차를 만들어 보내줬고, 차가 떨어지면 다산은 차를 간절히 요청하는 걸명(乞茗)의 시를 보내면서 차로 맺은 인연을 이어갔다.

 1809년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는 다산초당의 다산을 찾아가 제자가 됐고 차에 관한 해박한 지식, 시와 주역 등을 배우며 초의의 차와 학문의 깊이도 깊어갔다. 해배(解配) 돼 강진을 떠난 다산을 찾아 한양으로 간 초의는 다산 아들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를 만나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연을 맺게 됐다. 추사는 북경에서 만난 완원(阮元)이 끓여준 차 맛을 잊지 못하다가 초의 차를 만나며 조선 차에 매료됐다. 이후에 초의는 차 재배와 법제 등의 다도(茶道)를 정립하고, 차와 선은 한 맛이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담아 ‘동다송(東茶頌)’을 엮어서 다성(茶聖)이 됐다. 절애고도(絶崖孤島)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었던 추사가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를 통해 추사의 이야기가 전해지듯이, 추사와 초의선사의 차로 맺어진 우정에 대해서는 벽해타운첩(碧海朶雲帖), 완당전집(阮堂全集) 등에 남아 있는 약 60여통의 편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1840년 제주도로 유배 가던 55세의 추사는 해남 대흥사(대둔사)의 일지암에 들러 초의를 만나 차를 부탁하고 유배지로 갔다. 추사는 초의가 보내주는 다향에서 벗의 지극한 마음을 느끼고, 차에 대한 보답으로 ‘명선(茗禪)’이란 호(號)을 지어 선물했다. 초의는 추사의 해배(解配)를 기원하며 그의 제자들의 후원을 받아 1841년 대흥사 대광명전(大光明殿)을 건립하기도 했다.  추사는 초의가 소개한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2)의 재주를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들였고, 두 스승의 제자로 남종화의 대가가 된 소치가 초의에게 받은 매화나무는 진도 운림산방의 일지매(一枝梅)로 이어졌다. 초의가 부인과 사별한 추사의 상심을 달래주기 위해 어려운 뱃길을 따라 제주도로 찾아와 반년 정도 머물다 돌아가자, ‘일로향실(一爐香室)’이란 다실의 현판을 써 소치 편에 보내 감사를 전했다. 

 1848년 마침내 해배 된 63세의 추사는 귀향길에 일지암(一枝庵)에 들러 초의와 회포를 풀고 정담을 나누고 돌아갔고, 이후에 초의는 한양의 추사를 찾아 용호백로정(蓉湖白鷺亭)에서 차와 시담을 나누며 2년여 시간을 함께했다. 지음(知音)이었던 추사가 71세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영전에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을 지어 올리고 눈물지으며 일지암에 돌아온 초의는 그토록 좋아하던 시도 짓지 않고 깊은 선정(禪定)에 들거나 산문을 나서지도 않고 조용히 지냈다. 봉은사의 증명법사(證明法師)로 모셔도, 미황사의 무량전(無量殿) 짓는 주선(住禪) 자리에 모셔도 잠시 응했다가 곧 일지암으로 돌아왔다. 초의는 81세에 몸져 누웠다가 어느 날 시자(侍者)의 부축을 받아 가부좌를 한 채 입적하니 방안에 오래도록 기이한 차향이 가득했다고 한다. 서른 즈음에 만나 평생지기가 된 추사와 초의의 지란지교(芝蘭之交)는 그야말로 차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유안진님의 시,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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