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식 시인 '하얀 방' 육필원고
박영식 시인 '하얀 방' 육필원고



하얀 房



여기가 어딜까

하얀 사람들

하얀 물체

시계도 하얀 눈꽃이다

얼음 나라일까

어쩜 우주선 안일까



나의 존재는 없고

둥둥 떠다니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아아 엄청 목이 마르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누가 물 좀 줄 수 없나

제발



그리고서…

하얀 꽃 한 송이 피어났다



-2023년 10월 5일(木) 심장 판막 대수술 하루 뒤 UUH 중환자실에서 詩作.



●전쟁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로 죽음 앞에서 물을 찾는다. 왜 그럴까. 이번 대수술을 통해 물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평생 이렇게까지 목마름은 없었다. 군 복무 중에 완전군장을 메고 전투 구보를 할 때였다. 군사 도로를 따라 낭떠러지 아래 시퍼렇게 흐르는 냇물. 불덩어리 몸은 오직 저 물에 뛰어들어 원도 없이 벌컥대다 죽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의 물에 대한 최고조의 고통을 겪었다. 새 생명을 꽃 피워준 UUH 정종필 교수 팀원께 감사한다. 뭐니 해도 물은 만물의 원천이다.



●시인 박영식(朴永植·1952년~ ). 경남 사천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및 2003년 「월간문학신인상」 동시 당선. 시집 『우편실의 아침』, 『사랑하는 사람아』 외. 시조집 『편편산조』, 『굽다리접시』 외. 동시집 『빨래하는 철새』, 『바다로 간 공룡』 외. 그림동시집 『반구대암각화』. 제1회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 詩 최우수 당선 외. 김상옥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외. 새벗문학상, 푸른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동시 국무총리상, 낙동강문학상 외. 현재, 한국문협 문인권익옹호위원회 위원. 서재 「푸른문학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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