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논설실장
김진영 논설실장

 갑진년 아침이다. 갑진(甲辰)은 청룡(靑龍)이다. 육십갑자의 간지(干支)중 41번째에 해당하고 띠로는 용(龍)이다. 갑진(甲辰)년에는 아침 시간이 운기가 강하고 방향은 동쪽이 길하다. 12간지 가운데 용은 유일하게 상상계의 동물이다. 실존하지 않는 동물이 인간계의 12간지에 자리한 것은 그만큼 우리 생활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동물이기에 지역마다 용의 형상도 조금씩 다르다. 

 중국이나 동남아 쪽은 강 주변에 사람들이 악어의 모습을 차용했고 내몽골 등 초원지대에서는 말이 숨어 있다. 옥을 숭배한 홍산문화권은 옥룡을 형상화 하고 말과  뱀을 용의 아우라로 차용했다. 흔히 용은 승천의 이미지가 강해 왕이나 남성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용은 언제나 신성시되고 발복과 대운을 상징했다. 

 용의 해를 맞아 울산여지도가 울산의 용을 찾아 나선 것은 울산의 뿌리가 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울산의 지세를 두고 구룡반취(九龍盤聚)와 구룡쟁주(九龍爭珠)로 푼다. 그만큼 울산은 용의 지세가 충만한 땅이다. 아홉 마리 용이 만찬을 즐기고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기운이 서린 예사롭지 않은 땅이 울산이다. 

 이 가운데 오늘 울산여지도가 찾은 땅은 울산의 진산 무룡(舞龍)이다. 무룡은 무리(無里)와 용(龍)이 합쳐진 지명으로 무리는 물(水)을 의미하기에 무리룡은 용이 물을 품고 있는 산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울산 고을에 가뭄이 들면 무룡산에서 기우제를 올린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문헌비고(文獻備考), 울산읍지(蔚山邑誌) 등에는 실제로 무룡을 ‘무리룡산(舞里龍山)’이라 적고 있다. 무룡의 지세는 웅장하다. 지금 무룡을 춤추는 형상의 무(舞)를 사용하는 것도 용이 춤을 추는 듯한 지세를 표현한 의미다. 이 산은 북구의 화봉동과 연암동, 신현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450m의 보통 산이다. 북으로 동대 삼태봉 토함으로 이어지고 남으로 새바지산과 마골, 동으로는 우가산(牛家山)으로 산줄기를 이어 가다가 동해안으로 미끌어진다.

 무엇보다 무룡이 신비로운 것은 울산이 가진 오래된 용의 역사를 증명하는 지세라는 점이다. 울산의 오래된 시간을 더듬다 보면 결국 역사시대 이전의 울산이 가진 경이로움과 만나게 된다. 자료가 없으니 증명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직도 울산의 곳곳에는 인류문화의 원형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구대암각화이고 동해의 고래문화와 태화강 100리의 수려함이다. 그런 자산들이 단순히 천혜의 비경으로 남아 있지 않고 수렵과 사냥으로 웅비하던 북방문화와 집채보다 큰 고래를 포획했던 해양문화의 기개가 바위그림으로 남아 있는 곳이 울산이다. 

 울산의 지형은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양기를 오롯이 품는 구조다. 이는 형산강 구조대로 지반이 강하게 형성돼 분지형을 이루며, 풍수지리 양기명당(陽基明堂)의 이상적 자세다. 

 서북쪽으로 고헌산과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치술령, 연화산 등이 둘러싸고 동으로 무룡산, 북으로 함월산, 서북으로 문수산, 남으로 신선산이 에워싼 절묘한 지형이다. 

 울산은 오묘한 땅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해와 맞닿은 무룡산을 기점으로 서쪽 끝 가지산 자락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맥이 병풍처럼 자락을 펼친 종착지다. 그 산세에 굽이친 동천강, 태화강, 여천강, 회야강의 물줄기가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가히 비경이다. 경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울산은 원시시대부터 온갖 식생의 보고가 될 자산을 갖춘 셈이다. 그 흔적이 공룡발자국과 고래유적, 학과 떼까마귀, 그리고 백로의 보금자리로 남아 이 땅이 예사로운 곳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울산이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로 깃발을 휘날리던 시절, 개발의 첫 삽은 해안이었다. 풍수지리로 볼 때 울산의 해안은 울산에 풍요를 가져다줄 충분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바로 구룡반취(九龍盤聚)의 지세가 이를 웅변한다. 무룡에서 가지산 자락까지 울산은 전형적인 용의 기운을 가진 땅이다. 동해안과 접해 있는 울산은 태백산맥이 남진하는 중에 험한 기를 벗어 버리고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는 형상이다. 그 산자락에서 물의 기운이 모여 내달린 물줄기가 아홉 마리 용이고 그 용이 울산 앞바다에 이르러 잔치상을 받아 만찬을 즐긴 모습이 구룡반취라는 이야기다. 무룡의 정상에서 보면 여러 물줄기가 삼산벌을 적시며 기름진 땅에서 풍성하게 일군  과실이 충만한 상을 차린 모습이다. 흥미로운 것은 울산의 산세는 시대가 변하면서 기 기능과 역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무룡이 주산이던 시절은 철의 제국이 삼한일통의 위업으로 기세를 떨쳤고 함월이 이어받은 주산은 풍요와 부귀를 안겨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밑그림이 됐다. 그 운세가 다하자 울산의 주산은 다시 문수로 이어져 역사와 문화가 재평가 받고 있다. 바로 그 세 봉우리가 시절마다 역할을 달리해 왔다.

 오늘 주인공인 무룡은 신성한 기운이 충만한 땅이다. 무룡산 정상에 있었다는 연못에는 일곱 마리 용의 전설이 전한다. 앞을 보지 못해 왕따를 당했던 용이 옥황상제의 딸의 보살핌으로 천상에 올라 눈을 뜬 이야기와 죽은 자의 묘를 쓰면 가뭄이 들어 물이 말랐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신비감을 더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무룡산의 배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어느날 금강산 도사가 무룡에 올라 지세를 살피다 무릎을 쳤다. "이 산에 배가 지나가면 인근이 발복 하리라"고 예언했다. 산자락에 무슨 배가 지나가느냐고 황당해 했지만 얼마뒤 한국전쟁 때 실제로 미군의 수륙양용함이 산자락을 타고 올라 동해로 나갔다. 그 시절부터 무룡은 산자락 아래 중공업과 자동차의 기계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믿거나 말거나다. 김진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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