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양정동에서 35년간 식당을 운영해온 박경수씨가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 북구 양정동에서 35년간 식당을 운영해온 박경수씨가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 도시재생사업 구상도. 울산시 제공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 도시재생사업 구상도. 울산시 제공
 

울산 북구 염포·양정동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다. 1968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설립된 후 현재는 5개의 완성차 공장과 엔진 및 변속기 공장에서 3만2,000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하루 평균 6,000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연간 100만대 이상 차량을 200여개 국가에 수출하는 등 대한민국 산업의 핵심지역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염포·양정동은 수만명의 노동자가 출·퇴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 열악한 도시 인프라 때문에 고연봉의 자동차 직원들조차 이곳에 정착하는 걸 꺼린다. 현대차 직원들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들도 낙후된 동네에서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든 상황이다. 지자체가 도시재생을 위해 5년간 무려 100억원을 투입하는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사업을 벌였지만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정문에서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오면 영진그린맨션에서 양정초등학교까지 약 600m에 걸쳐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 사업에는 울산 북구가 예산 37억원 들여 지난 2021년 9월 준공했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는 지역적 특색을 살린 특화거리를 통해 침체된 지역을 살려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취재진이 찾은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는 찬바람만 날리며 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띄엄띄엄 그려진 자동차 그림은 아파트 분양 현수막에 가려져 있고, 가게 1층만 환경개선사업이 이뤄져 시선이 조금만 위로 향하면 낙후된 건물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35년째 양정동에서 식육식당을 운영해온 박경수(65)씨가 지난 16일 취재진을 안내하며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 게 하나도 없는 100% 실패작"이라며 "애들 장난 같은 벽화나 조형물 몇 개가 전부인데 여기에 누가 사람이 오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추진 당시 동네 주민들은 지역 상권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현대자동차를 견학하거나 볼일이 있어 찾는 방문객 등이 길 건너 자동차 테마거리를 둘러보며 상가에서 먹거리도 즐기고 거리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는 모습을 바랐는데 벤치도 거리 끝에 두 개 정도 설치해 쉬어갈 곳 하나 없게 만들었다"며 "보도블럭도 개선해 차 없는 거리를 만들었으면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차량 일방통행을 가능하게 해 이도저도 아닌 거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북적북적 ‘장밋빛 기대’ 무너져 … 주민에 오히려 ‘독’

자동차 테마거리, 불법 주정차 만연

주변 콘텐츠 연계 등 방안 모색해야

소금포 역사관, 방문객 갈수록 줄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 대책 시급

염포시장, 도시재생 소식에 월세 쑥

상권 활성화 커녕 빈 점포만 늘어나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에 만난 여운발씨. 73년 동안 양정동에 살았다는 그는 "양정동과 염포동은 지도를 보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현대차 사옥과 담으로 단절돼 있다. 직선거리로 200~300m 거리를 간선도로까지 나와 돌아서 가야 한다"며 "만약 이 길이 뚫려 있었다면 현대자동차 문화회관과 자동차 관련 사업연계를 하거나 자동차 테마거리와의 연계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의 경우 현대차가 생산했던 차량들의 모형 등을 볼 수 있는 홍보관을 갖추고 있으며, 현대차 공장견학 프로그램에 첫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연평균 현대자동차 견학 인원이 1만6,450명임을 감안하면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에 대한 구성과 활용방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견학 프로그램과 연계도 되지 않고 있다.

주민 권오명(68)씨는 "주변에 오치골 공원이나 마골산, 염포전망대 등 이미 잘 조성한 사업이 많다"며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 하나 조성하고 유지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잘 조성된 콘텐츠와 연계해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의 도로 한쪽 편으로 불법주정차량이 줄지어 서있다.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의 도로 한쪽 편으로 불법주정차량이 줄지어 서있다.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에 설치된 조형물이 불법주정차량에 가려져 있다.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에 설치된 조형물이 불법주정차량에 가려져 있다.
 

#'테마거리'에 불법주정차만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보니 결국 불법주정차 구역으로 전락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도시재생사업 이후 오히려 전보다 보행이 힘들어졌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취재진이 찾은 이면도로 양옆으로 인도구간인 노란선 안으로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북구는 테마거리를 조성하면서 거리 양 끝에 석재 볼라드와 화분 등을 설치해 불법주정차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물을 피하거나 이를 비웃듯 차주들이 아예 옮겨버리고 주차를 하고 있다.

취재진이 직접 석재 볼라드를 양손으로 돌리면서 밀자 의외로 쉽게 옮겨졌다. 인근 상가에서도 불법주정차를 막기 위해 가게 앞에 라바콘과 물통 등을 내놓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교대로 출근하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동네에 주차하며 골목 곳곳이 빼곡히 차량으로 가득찬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한 음식점 주인은 "예전에는 주간 근무자들이 퇴근하면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식당도 이용하고, 야간 근무자들이 아침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근무시간도 바뀌어서 아침 출근 시간대에 갓길에 차들이 빼곡히 들어섰다가 오후 3시 30분 교대시간이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만 한다"며 "공용주차장도 만들어놨더니 잘 쓰지도 않는다. 단속을 해달라고 계속 민원을 넣고 있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울산 북구 소금포역사관 인근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울산 북구 소금포역사관 인근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토막 난 소금포 역사관 방문객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의 또다른 사업인 소금포역사관은 북구 염포동 193번지 일원에 지상 3층, 연면적 553.52㎡ 규모로 지난 2021년 건립됐다. 역사관 1층은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은 역사전시실과 소금체험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구성됐다.

소금밭(鹽田)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염포(鹽浦)는 울산읍지에 따르면 1935년 울산전체 15만9,173.55㎡규모의 염전에서 1년에 약 15만6,780㎏을 구워내 당시 금액으로 5,264원의 수입을 냈다.

북구는 '염전이 있었던 포구'라는 기억을 되살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소금포역사관을 새롭게 조성, 동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 명소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해 방문객은 4,226명으로 전년도인 2022년도 7,831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개관 이후 2022년 12월까지 1만226명이 찾아 월평균 640명이 방문한 반면 지난해는 월평균 350명이 방문한 것이다. 이마저도 단체 견학 비중이 높은 어린이 방문객이 5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소금포 역사관 내 체험 참여자 수는 394명에 불과했다.

소금포역사관 해설사 A씨는 "가장 수요가 높은 단체 견학을 늘리려면 전시 외에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하는데, 동 직원이나 해설사가 열의가 없으면 프로그램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동 직원과 해설사가 서로 뜻이 맞으면 가능하지만, 두 직종 다 1년 정도면 사람이 바뀌다 보니 지속성이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동완 염포시장 상인회장이 시장 중심의 빈 점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국동완 염포시장 상인회장이 시장 중심의 빈 점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시장은 어려운데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소금포 역사체험관과 연계해 염포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자 북구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염포시장 내 소통의 시장길 조성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2020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6개월간 노후간판과 햇볕과 비를 막는 지붕을 설계·설치하고 건물벽면을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염포시장 상인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1990년대부터 참기름집을 운영했다는 시장 상인 이현욱(85) 씨는 "처음에는 상인들이 공사를 반대했지. 소금포 역사관이 들어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사업내용이 없었거든"이라며 "소금포 역사관이 생기면 이와 연계해 상권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 별다른 효과가 없어. 종종 학생들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시장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여서 크게 도움이 안돼"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알기로는 도시재생사업을 한 양정이나 염포 상황이 다 똑같이 안 좋아"라며 "우리가 바라는 건 장사가 잘되는 것뿐인데..."라고 한숨 쉬었다.

상설시장으로 운영돼 온 '염포시장'은 지난 2020년 10월에 정식 시장으로 등록됐다. 이후 매주 화요일마다 화요장도 열고 있지만 다른 동네 5일장과 비교하면 손님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시장 골목을 쭉 걸어보니 군데군데 상가들이 장사를 하지 않고 비어있었다.

국동완 염포시장 상인회장은 "시장 중심이 되는 위치의 가게들은 전부 비어있다"며 "예전에는 다들 영업을 하는 점포들이었는데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골목이 정비됐다고 건물주들이 월세부터 올려버리니 누가 들어가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국 회장은 "답답한 마음에 구청에 건물을 매입해서 상인들에게 임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시장 상인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 이전에는 15만원 하던 월세가 3배가 넘는 60만원으로 오른 것이다. 이후 가게는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도시재생사업이 오히려 주민들에게 독이 됐다는 것이다.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는

노사민의 어울림, 소금포 기억되살리기 도시재생사업은 주변 지역 개발 활성화와 정비구역 과다 지정으로 인한 쇠퇴를 막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기반으로 지역 내 근로자와 주민들이 지역 활성화를 이끄는 사업이다. 지난 2015년 12월 선정돼 이듬해부터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 조성사업과 소금포 역사관 건립사업을 비롯해 △염포시장 환경개선 △소통의 시장길 조성 △노사민 사랑방 건립 △상권활성화 지원사업 △주민상인 대학 운영 등 각종 사업을 담고 있다.

'양정 자동차 테마거리'는 양정초등학교에서 현대자동차문화회관까지 약 600m 구간을 5개 구역으로 나눠 시대별 자동차 디자인 변천사를 담았다. 영화 '노트북'에 나온 인류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부터 영화 '택시운전사(2017)'에서 송강호가 몰던 택시, '배트맨:다크나이트(2008)'에 등장한 배트모빌까지 이색 차량들이 상가와 거리 벽면에 입체형태로 구현, 개성이 부족한 양정중앙로에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이미지를 차용해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는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자 했다.

소금포 역사관은 염포·양정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지난해 7월 공사를 시작해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553.52㎡ 규모로 조성됐다. 총 사업비는 29억원이 투입됐다.

역사관 1층은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은 역사전시실과 소금체험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구성됐다. 울산의 소금과 염포의 역사 등을 옛 사진과 전시자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소금배가 소금을 싣고 나르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최영진 기자 zero@iusm.co.kr 윤병집 기자 sini20000kr@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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