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울산으로 왔지만 '말(한국어)'을 못해 온몸이 묶였다. 모든 알마(외국인)씨들에게 수 십년 동안 이어져 온 과제다. 반복되는 문제지만 여전히 해결을 위한 선택지는 좁다. 울산지역 외국인 적응을 위한 리빙랩 첫 실험 대상은 '언어장벽'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다.

본지가 꾸린 리빙랩 실험 대표단에 의하면 알마씨들은 병원이나 관공서 이용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대화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상 마비 수준이다. 실제 법무부가 지난 2022년 기준 국내에 5년 내 거주한 외국인 2만명을 대상으로 '한국생활에서 어려운 상황'을 조사한 결과 언어문제가 4,940명(24.7%)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의 언어생활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알마씨들과 동행해 실태를 조사했다.

한국말에 서툰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소속 러시아인 상담사와 병원을 방문했다.
한국말에 서툰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소속 러시아인 상담사와 병원을 방문했다.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병원 무인접수대에 뜬 한국어를 읽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다.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병원 무인접수대에 뜬 한국어를 읽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다.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접수 대기를 위해 간호사와 얘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 코스흐 파벨(53)씨가 접수 대기를 위해 간호사와 얘기를 하고 있다.
 

# 러시아인 손에 쥔 한국어 진료안내문

"한국어 하실 줄 아는 보호자분 계실까요?"

지난달 28일 울산 동구의 한 대형병원에서 만난 코스흐 파벨(53·러시아)씨.

1년 전 취업 목적으로 울산에 온 그는 오랜 약 복용으로 복통이 생겨 간수치 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간단한 인사만 한국어로 할 줄 아는 파벨씨에게 병원 진료는 매번 진땀 빼는 순간이다.

미리 받은 사전 진료 안내문에 진료과, 진료의, 진료 후 절차까지 모두 한글로 적혀 있다 보니 접수 절차를 모르는 건 당연했다.

입구에서 한참을 어리둥절하던 그는 미리 통역을 요청한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소속 러시아인 상담사가 도착해서야'진료·접수'라고 적힌 무인접수대를 찾을 수 있었다.

눈치껏 미리 전달 받은 큐알(QR) 코드를 대면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어서 한국어로 된 예약 확인창이 떴다.

'예'를 뜻하는 '접수'와 '아니오'를 뜻하는 '취소' 선택창 모두 한국어로 돼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순번 대기를 위한 접수 때문에 간호사가 한국말로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를 알아듣지 못한 파벨씨가 당황하며 두리번거렸다.

간호사는 "혹시 한국어 하실 줄 아는 보호자분 계실까요?"라고 소리쳤고, 근처에 있던 상담사가 급하게 뛰어갔다.

그는 "상담사 없이 혼자 왔을 땐 휴대폰 번역기에 의존해 진료 절차를 밟았는데, 정확한 번역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며 "오늘은 상담사가 옆에서 도왔기 때문에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었지 상담사가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러시아 사람이라 영어도 힘들다"며 "안내데스크나 태블릿 PC 기기 등에 주요 진료실 위치 정도는 직접 알아볼 수 있게 다국어로 병행 표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건강검진·은행…생활 속 모든 것이 묶였다

통역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국인들은 아예 손발이 묶여버린다.

울산에서 엔지니어 연구원으로 근무한 지 2년차인 네팔 출신 마니스(37)씨도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건강검진 질문지를 받았는데 수십가지 질문이 한국어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한국어는 서툴고 통역 해줄 사람은 없었던 그는 하나하나 번역기를 돌려 작성했고, 모든 질문지에 답을 하기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하소연했다.

마니스씨는 "그때 너무 힘들어서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 가는 건 엄두도 못 낸다"며 "주변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대부분 아파도 참는다"고 털어놨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동구가족문화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듣고 있는 결혼이민자 마리아(45·필리핀)씨는 "은행을 방문하면 남편에게 전화해 대신 받게 한다"며 "2009년에 한국에 왔지만, 아직도 은행과 관공서 업무는 어렵다"고 했다.

같은 반 쥬벨린(33·필리핀)씨 역시 "얼마 전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보험사를 부르려 하니 전화 자동응답시스템(ARS)이 어려워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며 "자꾸 선택을 하라 하는데 뭘 선택해야할지 몰라 남편에게 전화 걸어 겨우 해결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수업 '헬로울산 한글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수요는 많은데…" 다양한 외국인에 교육 기회 제공돼야

이렇듯 언어 장벽은 높은데 이를 해결해 줄 한국어 교육 기회는 부족하다.

울산에는 외국인들의 한국 적응을 돕는 '외국인·다문화지원 기관'이 있다.

지난 2022년 개소한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를 비롯해 중구·남구·동구·북구·울주군가족센터와 각 구군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 8곳 등 총 14곳이다.

이 중에서 한국어 교육 관련 사업은 울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와 각 구군 가족센터에서만 진행하고 있다.

사업별로 △헬로울산 한국어교실(외국인주민지원센터) △결혼이민자역량강화사업(가족센터 공통) △사회통합프로그램(남구·북구 가족센터) △다문화가족방문교육사업(가족센터 공통) △야간반 한국어교실(중구 가족센터)인데, 야간반 한국어교실은 출석률 저조 등 이유로 올해는 폐강됐다.

지난해 이 사업들의 총 수강자는 중복 수강자 포함 총 2만2,791명이다.

문제는 대부분 사업이 가족센터에 치중해있다 보니 '결혼이민자'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실제로 울산시에서 받은 한국어 교육 관련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이민자 한국어 교육 수강생은 중복자 포함 1만8,588명으로 전체의 82%를 차지한다.

외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의 수강생은 고작 4,20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취업을 위해 울산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수가 급격히 늘고 있어 근로자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법무부에서는 '산업현장 밀착형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조선업에 근무하는 외국인력 대상으로 언어장벽 및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한국에 조기 적응할 수 있도록 강사가 기업을 직접 방문해 교육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대상이 조선업 대기업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한정돼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잔업 등 근무시간대가 일정하지 않고 직접 교육장을 찾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일반 근로자들에도 이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울산외국인지원센터 초급반 허보경 강사는 "울산은 산업도시다보니 회사마다 외국인 노동자가 굉장히 많다"며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과 의사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은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나 일반 근로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며 "그들을 위한 다양한 한국어 교육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만 해당 기업의 협력이 '필수'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한 가족센터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으로 확대하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본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일정 근무 시간을 무조건적으로 빼주는 등 회사 배려가 필요한데 가능할 지 모르겠다. 이런 협력 없이는 어떤 프로그램도 자리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유리 울산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센터장은 "미등록외국인을 포함해 4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이미 울산시민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다"며 "다양한 교육 기회를 늘려 서로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여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김귀임 기자 kiu2665@iusm.co.kr·신원윤 기자 dnjsdbs3930@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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