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구 중앙동(성남동, 옥교동, 학산동, 교동)은 지난 600여년 동안 울산의 행정·교통·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말 그대로 울산 상권의 중심이자 젊음의 상징이었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시내에서 보자', '시내에 가자'라고 하면 중앙동 번화가에서 만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도시가 계속 확장되고 상권이 남구 삼산동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시내'라는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굳이 중앙동에 가지 않아도 시내에서 누리던 콘텐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구는 '울산의 종갓집'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원도심의 역사·문화자원, 전통시장, 특화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목표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82억원을 투입해 '울산, 중구로다(中具路多)'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원도심은 썰렁하기만 하다.
 

주점이 문을 여는 오후 6시임에도 텅 빈 '문화의 거리'의 호프거리. 불 켜진 주점도, 길을 걷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주점이 문을 여는 오후 6시임에도 텅 빈 '문화의 거리'의 호프거리. 불 켜진 주점도, 길을 걷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젊음의 거리의 한 빈 점포. 오랜 기간 방치돼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처럼 변한 상태다. 최지원 기자
젊음의 거리의 한 빈 점포. 오랜 기간 방치돼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처럼 변한 상태다. 최지원 기자
 
김병임 젊음의 거리 상인회장이 수년 전 이미 취소된 공공건축물 조성사업의 조감도를 가리키며, 방치된 옛 중부소방서 부지를 하루빨리 채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김병임 젊음의 거리 상인회장이 수년 전 이미 취소된 공공건축물 조성사업의 조감도를 가리키며, 방치된 옛 중부소방서 부지를 하루빨리 채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성남동 심장 젊음의 거리, 텅빈 거리에 공실만 가득

'중구로다' 도시재생사업의 주안점은 단연 상권 활성화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방문객을 늘릴 방책으로 거점시설물 조성 및 보행환경 개선을 내걸었다. 특히 주요 상권이었던 '젊음의 거리'와 '문화의 거리' 일대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역의 상인들은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체감을 크게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중구 성남동119안전센터에서 뉴코아아울렛성남점까지 약 500m에 걸쳐 조성된 '젊음의 거리'는 과거 저녁 시간대만 되면 밀려드는 인파에 몸을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은 번화가였다. 하지만 지난달 취재진 찾은 젊음의 거리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었다.

10년 동안 건설공사용 칸막이로 둘러싸여져 흉물로 방치돼 온 옛 중부소방서 부지부터 곳곳에 '임대' 딱지와 현수막이 붙은 수십개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그나마 1층 상가들은 빈 곳이 적었지만 2층과 3층 상가는 공실이 훨씬 많았다.

젊음의 거리 초입이자 외곽에 조성한 '호프거리'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이곳은 1층부터 빈 점포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주점들이 하나 둘 문을 열었지만, 거리에는 '차 없는 거리'란 표현이 무색하게 불법주정차된 차량이 지나다니는 사람보다 더 많았다.

중구는 호프거리를 포함한 젊음의 거리 활성화를 위해 거리 천장에 조명과 음향 시설을 설치해 '클럽형 야시장'을 만들고자 했지만 조명은 제대로 쓰이지도 않았다.

김병임 젊음의 거리 상인회장은 "지난 2021년에 도시재생사업으로 5억원 정도를 들여 조명과 음향 시설을 만들었는데, 전기값이 굉장히 많이 드는 데다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방문객이 적다 보니 지금은 행사가 있을 때만 켠다"며 "상인회에서 계속 운영하려 해도 소비 한파와 코로나 대출 상환 만기 탓에 회비도 잘 안 거둬지는 실정이다. 당장 거리 점포 중 30개가 공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수 중구상인회장이 큐빅광장에서 시설물이 좁은 공간 탓에 제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다며 설명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박상수 중구상인회장이 큐빅광장에서 시설물이 좁은 공간 탓에 제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다며 설명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성남동 관문 큐빅광장, 규모 작고 탈선 장소로 방치돼

성남동을 찾는 방문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처음으로 맞이하는 곳이 큐빅광장이다. 젊음의 거리와 문화의 거리, 성남프라자, 시계탑사거리 등 원도심 내 주요 지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날 취재진이 찾은 큐빅광장은 청년들의 푸르름을 머금은 공연과 행사 대신 교복을 입은 채 '금연구역' 표시 아래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는 학생들만 볼 수 있었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일탈 청소년들의 집합소로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큐빅광장이 방치된데는 애매한 규모와 시설물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핵심인 야외공연장은 무대가 좌우 폭이 2m가량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아 밴드 등 장비를 활용하는 공연이 어렵다. 또 관람석 역시 무대 규모 정도인 데다 천장이 뻥 뚫려 있어 우천 시 공연 관람에도 어려움이 있다.

또한 원도심 내로 시내버스가 진입하는 유일한 길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대에 별다른 안내판이나 홍보가 없어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도 제기됐다.

박상수 중구상인회장은 "큐빅광장은 성남동 내부로 시내버스가 오가는 유일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문화, 먹거리, 놀거리 등 다양한 특징과 개성을 갖춘 원도심의 관문역을 해야할 곳인데 규모가 작다 보니 제대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며 "시계탑사거리와 함께 원도심 일대 중심 지역으로 큐빅광장을 개조할 필요가 있으며, 그에 걸맞는 홍보와 안내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음의 거리 내 조성된 경동선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 입구가 협소하고 안내 휘장도 잘 보이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최지원 기자
젊음의 거리 내 조성된 경동선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 입구가 협소하고 안내 휘장도 잘 보이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최지원 기자
 
10억원을 들여 조성한 '도심형 문화공간'은 토지구획 깊숙이 있는 데다 별다른 안내판도 없어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10억원을 들여 조성한 '도심형 문화공간'은 토지구획 깊숙이 있는 데다 별다른 안내판도 없어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7억월을 들여 조성한 '울산읍성 이야기로 쉼터'는 토지구획 깊숙이 있는 데다 별다른 안내판도 없어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지원 기자
7억월을 들여 조성한 '울산읍성 이야기로 쉼터'는 토지구획 깊숙이 있는 데다 별다른 안내판도 없어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지원 기자
 
울산 중구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옥상에 조성된 옥상공원. 점심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울산 중구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옥상에 조성된 옥상공원. 점심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특화 골목길 등 각종 문화공간 관리 소홀로 방치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지만 사실상 방치된 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공간도 즐비했다.

'구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성남동 219-128 일원)는 1921년부터 1935년 울산역이 학성동 일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울산에서 경주를 거쳐 대구까지 운행됐던 경동선 증기기차의 수원지인 급수정(우물)이 있던 곳으로, 중구가 1억2,000만원을 들여 증기기차의 수원지인 급수정과 급수탑을 부조 형태로 조성하는 등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수원지가 젊음의 거리 상가에 둘러싸인 형태에다 출입로가 하나밖에 없어 위치를 찾기 쉽지 않다. 게다가 안내도 깃발 형태의 휘장 2개 외엔 없는데, 이조차 인근 상가 간판이랑 혼동되거나 바람에 휘날려 잘 보이지 않는다.

또 각 10억여원, 7억여원 들여 조성한 '도심형 문화공간'(옥교동 190)과 '울산읍성 이야기 쉼터'(성남동 166-4) 역시 토지 구획 내 깊숙히 있어 이곳을 찾거나 지나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에 중구 관계자는 "2014~2015년 당시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된 이후 땅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면서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어쩔 수 없이 토지 구획에서 그나마 가격이 싼 중심부를 매입해서 시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8억원을 들여 만든 옥상정원 중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옥상정원은 어떠한 홍보나 안내가 없어 주민들이 존재 여부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취재진이 옥상에 올라갔을 때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잠겨 있기도 했다. 행정복지센터 내에 사무실이 있는 한 시민단체 회원조차 이곳 옥상에 정원이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중구문화원 바로 앞(옥교동 239-1) 일원에 31억원을 들여 아트리움을 조성, 복합문화공간 거점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있었는데, 도시재생 사업부서와 문화관광부서 모두 사업 주체를 떠넘겨 정확한 방향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운영을 맡은 중구문화원도 사업 내용과 이용현황 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문화 거점'으로 활용됐을지 의문이다.
 

보행자를 위해 '맨발의 청춘길'에 설치한 벤치와 미디어파사드 등이 불법주정차로 인해 유명무실한 상태다.
보행자를 위해 '맨발의 청춘길'에 설치한 벤치와 미디어파사드 등이 불법주정차로 인해 유명무실한 상태다.
 
불꺼진 '맨발의 청춘길'의 패션거리. 곳곳에 담배꽁초와 씹던껌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바닥 조명도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작동하지 않았다.
불꺼진 '맨발의 청춘길'의 패션거리. 곳곳에 담배꽁초와 씹던껌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바닥 조명도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작동하지 않았다.
 
'맨발의 청춘길' 곳곳의 빈 상가들이 깨지고 부서진 채 방치돼 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다.
'맨발의 청춘길' 곳곳의 빈 상가들이 깨지고 부서진 채 방치돼 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다.
 

#보행환경 개선했지만 찾지 않는 거리

낙후된 도심길과 골목을 개선해 보행환경을 증진하는 방향으로도 사업이 추진됐다. 보행환경 개선에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된 '공업탑 축제길 부활' 사업은 30억원을 투입해 약 500m에 달하는 중앙로에 2개 차로를 1개 차로로 좁혀 일방통행으로 만든 뒤 인도를 확장, 보행자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대 상권 활성화에는 크게 영향이 없는 모양새다. 박상수 중구상인회장은 "방문객이 늘었다는 인상은 받지 못 했다"며 "인근 성남프라자의 경우 콜라텍과 볼링장을 제외하면 방문객이 반 이하로 줄어들고, 그마저 매번 오는 50대 이상 중년층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역시 보행환경 개선 차원에서 꾸며진 '강소상가 특화거리 맨발의 청춘길'도 상황은 마찬가지. 젊음의 1거리에 8억4,000만원을 투입해 음악존·영화존·패션존 등 1970~1980년대 복고풍 골목을 만들어낸 이 사업은 2019년 준공 당시 젊음의 거리와 붙어있다는 특성 덕에 주변상권과 상생을 기대한 바 있었다.

하지만 취재진이 밤 사이 다녀본 길에는 셔터가 내려가 있거나 임대 딱지 붙은 가게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불이 켜진 일부 옷가게와 식당도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곳곳에 불법주차된 차량은 보행자 휴식을 위해 만든 벤치를 가로막고 있었다.

동작감지 센서가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7080 통기타 음악과 조명이 나온다는 음악과 패션존은 취재진이 수십 번을 오가도 묵묵부답이었고, 곳곳에는 담배 꽁초와 껌들이 바닥에 들러붙어 있어 미관상 좋지 않았다. 골목마다 금연과 과태료 부과를 알리는 표시가 붙어 있었지만 쭈구린 채 담배를 피는 무리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고, 몇몇 골목길은 가로등도 꺼져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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