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영화연구가
김정수 영화연구가

 아동 수업 과정으로 만나는 아이에게 1,000마리의 종이학을 건네줬다. 그간 꾸준히 접어 모아둔 종이학을 세고 또 세어 담아 손글씨로 응원의 문구와 함께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다시 만난 녀석에게 물었다. "너 선생님이 준 종이학 어떻게 했니, 잘 간직하고 있니?" 그러자 "그냥 뒀는데요… 세월이 지나면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염원을 담아 접어 모았던 것인데 정성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허허롭기까지 했다.

 이러한 마음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차라리 주지 말 것을…’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더니 꼭 그러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가 찾아왔다. 비로소 주는 마음에 상처가 나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비좁은 내 마음을 떠나 훨훨 날아간 종이학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니 마음보에 여유를 채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마치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처럼 메마른 상태이기에 오직 내 탓이라 여기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성숙한 삶을 꾸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를 좀 더 진솔하게 보여 주는 영화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채여준 감독의 《공수도: Justice High》(2019 한국)로 각본에는 임영주·채여준이 참여했다. 출연 배우로는 오승훈, 정다은 손우현, 정의욱, 김태윤, 손태욱, 유채온, 이예찬, 유현종, 박수은, 박지나, 조영재, 김동우, 신재승, 김영, 이재근, 이얀, 김은하, 박가람 등이 함께한 액션, 코미디이다. 영화는 ‘공수도’라는 운동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열혈청춘액션무비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수도로 함께하는 청춘들의 여유에 대해 그렸다. 

 이번에는, 김정훈 감독의 《탐정: 더 비기닝: The Accidental Detective》(2015 한국)으로 각본에는 김정훈·황혜순이 참여했다. 출연 배우로는 권상우, 성동일, 서영희, 박해준, 이승준, 윤경호, 조복래, 이해영, 박성일, 최성원, 지대한, 이언정, 이일화, 박준면 등이 함께한 코미디, 범죄이다. 영화는 사회 부조리를 쫓는 탐정들의 열정을 보여 준다. 이는 코믹 듀오의 비공식 합동 추리 작전으로 소시민의 아픈 곳을 헤아리고자 고군분투하는 탐정들의 여유로운 세계에 대해 그렸다.

 다음으로는, 조석현 감독의 《그대 이름은 장미: Rosebud》(2018 한국)로 각본에는 홍은미가 참여했다. 출연 배우로는 유호정, 박성웅, 오정세, 하연수, 이원근, 최우식, 채수빈, 박준면, 윤복인, 이준혁, 황석정, 조수연, 오하늬, 김정현, 장태성, 김기덕, 김민종 등이 함께한 코미디이다. 영화는 우리네 엄마의 열정 넘치는 삶을 보여 준다. 이는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 좋을 작품으로 꿈과 끼를 감춘 채 보통의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의 오지랖 뒤에 숨은 소소한 여유(?!)에 대해 그렸다.

 마지막으로는, 손용호 감독의 《살인의뢰: The Deal》(2014 한국)로 각본에는 안성진·손용호가 참여했다. 출연 배우로는 김상경, 김성균, 박성웅, 조재윤, 김의성, 기주봉, 윤승아, 송영창, 임종윤 등이 함께한 범죄, 스릴러이다. 영화는 잔혹한 연쇄 살인자에게 가족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이는 실화를 모티브로 하며 시간적 여유를 두고 치밀하게 계획해 완성한 남자의 복수극에 대해 그렸다. 

 앞에서 소개한 영화들은 흔히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여유가 가져다주는 소중한 가치와 영향력에 대해 일러준다 할 것이다. 

 공수도장을 운영하는 아빠로부터 공수도를 배워 온 소녀와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소년, 일진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또 다른 소년. 이들이 함께 성장해가는 일상 속 여유는 자연스러우며 풋풋한 삶의 향기로 잔잔한 울림을 전가하는 듯하다.

 또한 국내 최대 미제살인사건 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와 광역수사대 출신 레전드 형사의 만남으로 시작된 최강의 추리 콤비 ‘탐정’. 경찰서를 기웃거리며 수사에 간섭하다 마침내 수사 의뢰까지라니 두 남자의 여유가 되레 갑갑한 세상을 훈훈하게 해 줄 것만 같다.

 게다가 딸에겐 잔소리와 오지랖으로 허를 찌르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 대단했던 과거가 들통나며 일상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 또한 그녀의 과거로써 영원한 비밀이자 숨겨진 반전으로 곱씹을수록 성숙함이 더하는 삶의 진한 추억이 아닐까 한다. 

 더불어 가족을 잃고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었던 나날을 간신히 이겨내고서야 마음을 다잡은 남자. 범인을 잡기 위해 3년이란 세월 동안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나아가는 그의 몸짓은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공감을 불러오게 한다. 

그렇다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나의 오늘은 어떠한가. 인생의 참맛인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가.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묻고 답하기로 하자. 이로써 진정으로 채워지는 마음보 가득찬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김정수 영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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