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을 연상케 해 선암호수노인복지관 설치 당시 민원이 이어진 임도훈작 (제21회 한마음미술대전 특별상 수상작). 현재 울산남구문화원 뒤 꾸러기놀이터로 옮겨 와 있다.
'폐지 줍는 노인'을 연상케 해 선암호수노인복지관 설치 당시 민원이 이어진 임도훈작 <행복한 수레>(제21회 한마음미술대전 특별상 수상작). 현재 울산남구문화원 뒤 꾸러기놀이터로 옮겨 와 있다.

"작품을 보면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서 복지관 올 때마다 눈에 거슬리더니 철거돼서 다행입니다."

공공이 이용하는 복지관에 설치된 미술 작품이 방문객들의 정서와 맞지 않아 1년 만에 어린이 놀이터 마당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졌다.



2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선암호수노인복지관은 지난 2022년 11월 울산 남구와 울산 남구문화원이 각각 주최, 주관한 '제21회 한마음미술대전' 특별상 수상작인 임도훈 작가의 '행복한 수레'를 복지관 입구 마당에 설치했다.

울산남구문화원으로부터 설치 의뢰가 온 여러 작품 중 복지관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고른 작품이다.

하지만 복지관 주이용객인 어르신들의 반응은 복자관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작품 제목은 '행복한 수레'이지만 노인의 수레 끄는 형상이 힘겨워 보여 폐지 줍는 어르신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작품재료가 녹이 잘 스는 철인 것도 한몫 거들었다.

어르신들은 "노년에도 수레를 끌어야 할 정도라면 행복하다기보단 고단한 삶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견과 "젊었을 때 어렵게 지냈던 기억이 떠올라 싫다", "굳이 어르신들이 드나드는 노인복지관 입구 앞마당에 이 작품을 설치했어야 했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작품 제목 '행복한 수레'처럼 노년에도 수레를 끌 정도로 건강하다거나 수레를 끄는 일이 행복하다는 등의 작품 해석도 나올 수 있었겠지만 설치 장소의 적절성은 SNS에서도 논쟁거리가 됐다.

한 포털의 블로그에서는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을 첨부해 이 작품과 비교를 해놓기도 했다.



작가가 밝힌 작품 제작 의도는 관람객들의 이같은 해석과는 많이 달랐다.

남구청이 공개한 내용은 "베어링 구슬을 하나씩 밤하늘의 별들처럼 이어 붙여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고 갈등과 불안을 몰아내며 극복의 희망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작품으로, 폐지가 아닌 별을 줍는 할아버지의 형상으로 바라봤으며, 관람자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선암호수노인복지관은 민원이 이어지자, 울산 남구청, 울산 남구문화원과 논의해 설치 1년 남짓만인 지난해 연말 작품을 철거하고, 복지관 2층에 2023년 한마음미술대전 특별상 수상작 이송준작가의 '인피니티'를 새로 설치했다.

작품 철거가 늦어진 것은 지난해 치른 제22회 한마음미술대전 수상작 중 적당한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송준 작가의 '인피니티'는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구장 옆에 설치돼 포토 존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복지관의 전언이다.

선암호수노인복지관 관계자는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어르신과 선암호수공원을 찾는 일반인들이 기존 작품을 두고 '누가 봐도 폐지 줍는 노인이 떠오른다'라며 불편해하셨고,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모습으로 비쳐 거부감을 드러내셨다"라며 "어르신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라 골랐는데 오히려 어르신들의 생각과 입장을 못 헤아린 듯하다"라고 말했다.

선암호수노인복지관을 지나다 이 작품을 봤다는 한 시민은 "작가의 제작 의도는 선할 수도 있고, 관람객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르신들이 주로 오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설치 장소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철거한 '행복한 수레'는 지난해말 남구문화원 뒤쪽 꾸러기 놀이터 마당으로 옮겨져 어린 자녀들을 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별을 줍던 노인이 어린이 놀이터로 가게 된 것이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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