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현관 앞에는 여러 개의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갓김치와 아들의 최애 식품인 파김치, 내가 요즘 꽂힌 청소용품도 옆에 놓였다. 꼭 필요한 물건도 있지만 충동 구매한 것도 많다 보니 상자가 도착할 때마다 남편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핸드폰을 오래 들고 있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그중에서도 쇼핑에 따른 지출이 만만치 않다. 전문가가 찍은 사진과 상품의 솔깃한 후기도 한몫하지만, 손가락 하나로 이루어지는 편리함이 결정타다. 천수보살은 천 개의 손에 눈이 달려 중생의 고통을 살펴보고 어루만져준다고 한다. 하지만 내 손에 달린 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쇼핑으로 온라인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주부 역할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퇴근하는 중 갓길에 세워둔 트럭에서 전복을 팔고 있었다. 시장에 들르기엔 늦은 시간이라 옳다구나! 차를 세웠다. 굵은 전복 일곱 마리가 깨끗한 얼음결정 위에서 싱싱함을 뽐냈다. "빨리 팔고 우리도 집에 가려고요. 본전도 안되게 넘기는 겁니다." 그동안 빈약했던 식탁이 떠올라 덥석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을 때 상자 안이 휑했다. 어린 전복 세 마리가 서로 엉켜있을 뿐이었다.
가장 최근엔 제대로 당했다. 홈쇼핑의 호스트가 SNS에서 여름 재킷 광고하는 것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동안 마땅한 옷을 찾느라 눈여겨보던 참이었고, 바람이 슝슝 통하는 얇은 원단이며 스타일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모델이 입은 자태도 근사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한 장보다는 석 장의 가격이 꽤 저렴해 색깔 별로 고르고, 블라우스도 함께 담아 결제했다.
구매한 사실을 잊고 있을 무렵 옷이 도착했다. 성의 없이 꾸려진 겉 포장이 의심스러웠다. 옷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메일주소를 따라 들어가 보니 중국이 발송처였다. 반품 요청한 지 보름 후,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우니 물건 회수를 하지 않는 대신 2만원을 돌려준다는 답신이 왔다. 실랑이하는 동안 반환금이 점점 올라가더니 세 번째엔 가타부타 메시지도 없이 전액 입금되었다.
말뚝망둥어의 눈은 머리 위로 툭 튀어나와 있다. 물속에서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주변을 잘 살피기 위한 적응이다. 두 눈이 비교적 자유로워 여러 방향을 정찰할 때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갯벌에 몸을 낮게 붙여도 사방 주시가 가능하고 새처럼 위에서 접근하는 천적도 재빨리 발견한다. 집어넣었다 내미는 동작이 마치 눈알을 굴리는 것 같다. 이 녀석은 먹이를, 나는 쇼핑을 노린다.
얼마 전 주문한 물건들이 배달왔다. 꾸러미 안에는 실리콘 빗자루와 식물 지지대, 여름용 은색 뜨개실 그리고 블라인드 먼지 제거용 브러시를 비롯해 양우산이 들어있다. 넝쿨식물을 예쁘게 감아올리려 구입한 지지대는 반으로 부러졌고 양우산의 질감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럴듯한 사진을 보고 움직였던 팔랑눈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실리콘 빗자루만은 마음에 쏙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며 소파 밑에 뭉쳐져 있던 먼지 등이 말끔하게 쓸려 나왔다. 뜨개실도 색상이 썩 괜찮았다.
현명하게 소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엔 몇 가지가 있다. 필요와 가격, 품질을 따져 구매하는 합리적 소비자,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가치소비자,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비교하고 똑똑하게 구매하는 '스마트컨슈머start consumer', 단순 소비를 넘어 제품 개발, 평가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는 프로슈머라 한다. 나처럼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을 둘러보며 쉽게 구매하는 족속을 팔랑족이라 하면 어울리는 별칭이 아닐는지.
살아가는 건 끊임없이 소비하는 일이다. 가성비가 좋아서, 실용적이라서, 당장은 소용에 닿지 않지만 필요할 것 같아 선택하게 된다. 주문한 기억이 없는 물건, 배달되어도 입지 않은 옷가지, 냉동실을 꽉 채운 식품들을 보며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쇼핑하는 나를 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저당떡'이 눈길을 끈다. 떡을 좋아하지만 당뇨를 앓고 계신 아버지께 좋을 듯하다. 내 손가락이 어느새 결제창을 두드리고 있다. 내 안의 말뚝망둥어가 먹이를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