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유족, 향토사학가 등이 모인 학암이관술연구회는 포클레인을 동원, 생가앞 밭에 묻혀 있던 비석을 다시 발굴했다.  
 
   
 
  ▲ 21일 유족, 향토사학가 등이 모인 학암이관술연구회는 포클레인을 동원, 생가앞 밭에 묻혀 있던 비석을 다시 발굴했다.  
 
   
 
  ▲ 21일 유족, 향토사학가 등이 모인 학암이관술연구회는 포클레인을 동원, 생가앞 밭에 묻혀 있던 비석을 다시 발굴했다.  
 

항일운동가 이관술 선생 기념비가 또다시 갈 곳 없는 ‘방랑’신세가 됐다.
이관술 선생(1902~1950)은 일제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와 1940년대 사회주의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가로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다.
지난 1996년 유족들은 선생의 생가가 있는 울주군 입암마을 선바위주유소 안쪽에 기념비를 세웠지만 1년 남짓후 울산광복회 등 지역의 보수단체들의 반발로 비석을 뽑아내고 생가 앞 밭 한가운데 깊이 묻었다.
23년 만인 21일 유족, 향토사학가 등이 모인 학암이관술연구회는 포클레인을 동원, 생가앞 밭에 묻혀 있던 비석을 다시 발굴했다.
이유는 최근 선생의 생가가 외지인에게 팔렸고, 비석이 묻혀 있던 밭도 수년 전 이미 팔려 비석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날 발굴된 비석은 바로 옆집에 사는 후손집 앞에 임시로 세워뒀다.
학암이관술연구회는 비석을 깨끗이 청소한 후 세워둔 비석 앞에 임시안내판을 붙이고 내년 4월 다시 제막식을 열겠다는 계획이지만 하루빨리 이관술 선생의 독립 활동이 인정돼 원래 비석을 세우려 했던 선바위 공원에서 제막식을 열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관술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는 “지난 23년간 땅 속에 묻혀 있는 기념비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 제대로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왔는데 다시 갈 곳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배성동 학암이관술연구회 공동대표는 “학암선생은 해방 직후 정치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가장 양심적이고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로 선정될 만큼 현대사 속 중요 인물이었음에도 사회주의 계열 등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항일운동은 조명되지 못했다”며 “일제 강점기하에 감옥살이와 수배생활, 또 모진 고문과 폭력을 이겨내면서 일본에 투쟁한 학암의 공적은 어떤 이유로도 외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학암이관술연구회는 지난 9월 보훈지청에 이관술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달라고 신청한 상황이다. 결과는 이르면 내년 8월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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