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울산발전 역사 속에서 잊혀져버린 여성노동자
‘삶·이야기’ 정확히 기록·보존하는 작업 추진
미래의 지역 여성노동자 위한 중요한 일 될 것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대학시절 노래패 동아리 공연에서 처음 들었던 노래 가사가 내 마음에 훅하고 들어왔다. 이후 흥겨운 리듬에 맞춰 계속 흥얼거렸던 노래 ‘사계’ 가사 중 일부이다. 리듬은 밝은 기운이었으나 가사는 부르면 부를수록 당시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노동자들에게 미안함이 많아졌던 노래였다.
대학시절 야학에서 만난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친구들에게 나는 사회과목을 야학에서 가르치고 함께 어울리곤 했다. 그녀들이 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에는 야유회도 가고 그녀들이 묵는 기숙사에도 놀러가곤 했었다. 늘 얼굴이 파리하고 피부에 윤기하나 없이 피곤해 보였던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베니다 합판으로 지어진 바닥에 난방도 되지 않는 기숙사가 아닌 따뜻한 집에서 지금은 잠을 자고 있는지? 밥과 반찬 한가지와 간장을 놓고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고 있는지? 늘 궁금하고 보고 싶어진다. 
특히 매년 3월 8일이 되면 야학에서 2년 동안 함께 했던 그녀들이 더욱 생각나곤 한다. 3월 8일은 세계여성노동자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 1만5,000명은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보다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며 임금차별 뿐만 아니라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도 없었다.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여성 노동자 여러명이 숨지게 되자 이를 계기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러트거스 광장에 모인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1975년을 UN에서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였다. 그 이후 1977년에는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나혜석, 김일엽, 박인덕 등 여성운동가들이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했다. 이후 공식적인 기념행사는 1985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3월 8일에 열린 제1회 한국여성대회였고 그 이후로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울산에서도 3월 8일에는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성평등 세상을 위해 여성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3월 8일에는 유독 크게 다가온다. 
울산은 1962년 ‘국가공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남성의 일자리가 많은 도시,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울산에는 중화학공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섬유공장들도 많다. 70·80년대 여성노동자들 대부분은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일했다. 울산에도 태화, 고합(고려합섬), 효성(동양나일론), 태광산업 등의 화섬공장에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그 당시 밤낮없이 일하였다. 
올해엔 울산여성가족개발원에서 의미 깊은 작업을 해보려 한다. 울산발전의 역사 속에서 잊혀져버린 여성노동자들을 다시 소환해 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려한다. 과거 울산지역의 노동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노동자의 삶을 기억하는 것, 그녀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담아내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은 미래의 울산지역 여성노동자들이 그녀들의 노동을 공평하게 대접받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70·80년대 미싱에 찔려가며 밤샘노동을 했던 우리들의 언니, 동생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을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는 노동존중도시 울산의 위상에 걸맞게 ‘시민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진심어린 기념행사가 열리게 되기를 바란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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