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속옷 빨래’ 과제 낸 前 초등교사, 국민참여재판 ‘유죄’
검찰, 평소 부적절한 언행 등 성인지감수성 부족 강조
불쾌한 심경 밝힌 학부모 진술서·증언 내세워 압박
일반 시민 눈높이 배심원에 ‘현재의 성인지감수성 기준’ 대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 괜찮다고 해서, 앞으로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속옷 빨래’ 과제를 내주고 인증 사진을 올리게 한 뒤 ‘섹시하다’ 등의 성적 표현을 해 파면된 교사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의 요구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모두 그의 행위가 ‘성적 학대’라고 판단했다. 단 1명의 이견도 없었다.

지난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16시간 동안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은 성적 학대를 바라보는 ‘사회통념’을 확인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비교적 모호한 의미로 해석의 여지가 클 수밖에 없었던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일반 시민 눈높이의 배심원 7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그것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을 시작하면서 심리를 맡은 형사12부 황운서 부장판사는 “성인지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여러 혐의사실 중 가장 핵심 쟁점은 초등학생에게 내준 ‘속옷 빨래’가 ‘성적 학대행위’에 해당하느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적 학대행위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성폭행 등의 행위로서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를 말한다’며 ‘행위자와 피해아동의 의사·성별·연령, 행위자와 피해 아동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인 행위 태양, 그 행위가 피해 아동의 인격 발달과 정신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의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돼있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 측은 교사로서 피고인이 학생들을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학부모들에게 부적절한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평소에도 얼마나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지를 강조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내준 ‘속옷 빨기’ 과제를 단편적인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평소 언행과 가치관 등의 연장선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선 변호인 측은 이를 30~50여가지의 효행과제 중 하나일 뿐 어떠한 의도는 없었으며, 피고인의 교사로서 자질이나 학습방식의 아쉬움이 아닌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냐, 하는 단편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호소했다.

그만큼 검찰과 변호인 측이 제시하는 증인과 증거도 달랐다. 검찰은 2019년과 2020년도 ‘속옷 빨래’ 과제를 한 아동의 학부모들이 불쾌한 심경을 밝힌 진술서와 같은 맥락의 증언을 하는 학부모 증인을 내세웠다. 변호인 측은 2017년도 ‘속옷 빨래’ 과제를 한 아동의 학부모를 증인으로 불렀는데, 이 학부모는 과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정반대의 진술을 했다.
‘섹시’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검찰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부적절한 단어로, 변호인은 대중매체에서 통용되는 ‘외모에 대한 칭찬’의 단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교사인 피고인의 행위가 성장하는 아동의 성적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도 주장했고, 변호인 측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문가 증인의 발언을 내세웠다.

결론적으로 검찰은 7명의 배심원 모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배심원 모두 피고인의 행위가 현재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춰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성적 학대’라고 판단했다. 성적 의도가 없었다거나, 아이들과의 유대관계 등을 위한 ‘선의’였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 내내 시대적 사회통념을 강조했던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하면서 “일부가 괜찮았다고 해서, 과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지금도 괜찮은 것이 아니고, 지금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앞으로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받은 피고인은 이번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과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 등을 선고받았다. 일부 부적절한 신체 접촉으로 인한 정서적 학대 혐의에 대해서는 배심원 7명 중 5명이 무죄로 판단하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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