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울산 개운포의 처용설화에 등장하는 처용이란 인물을 지명에 옮겨 처용리라는 마을을 만든 호적단자의 발굴로 처용리의 실체를 확인했다.  사진은 1780년 호구단자. 이 마을 제4통 3호에 거주하는 유학 김하정(金夏鼎)의 호구단자에서 청량면 라는 마을 이름이 처음 나타난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울산 개운포의 처용설화에 등장하는 처용이란 인물을 지명에 옮겨 처용리라는 마을을 만든 호적단자의 발굴로 처용리의 실체를 확인했다. 사진은 1780년 호구단자. 이 마을 제4통 3호에 거주하는 유학 김하정(金夏鼎)의 호구단자에서 청량면 <처용리>라는 마을 이름이 처음 나타난다.
 
사진은 1774년 호구단자.  1774년의 호구단자에서는 구족리 제8통 4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처용리라는 마을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
사진은 1774년 호구단자. 1774년의 호구단자에서는 구족리 제8통 4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처용리라는 마을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
 
1891년식 호적대장(좌)을 통해 울주군의 12개 읍면 중 서생면의 연혁을 자세하게 밝힐 수 있게 됐다.
1891년식 호적대장(좌)을 통해 울주군의 12개 읍면 중 서생면의 연혁을 자세하게 밝힐 수 있게 됐다.
 
1891년식 호적대장(우)
1891년식 호적대장(우)
 
조선총독부령 제80호 등의 사료를 통해 1931년 4월 1일이 아닌 1937년 7월 1일에 '동면이 방어진읍으로 개칭·승격됐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동구청 홈페이지를 보면 1936년 7월 1일 자로 방어진읍으로 승격됐다고 잘못 나와 있다.
조선총독부령 제80호 등의 사료를 통해 1931년 4월 1일이 아닌 1937년 7월 1일에 '동면이 방어진읍으로 개칭·승격됐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동구청 홈페이지를 보면 1936년 7월 1일 자로 방어진읍으로 승격됐다고 잘못 나와 있다.
 
울산시 행정구역명칭 변천사
울산시 행정구역명칭 변천사
 

문헌자료 등의 한계로 일부 잘못 전해지고 있는 울산의 옛 지명이 바로 잡혀 울산 연혁의 정체성 확립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울산역사연구소가 「울산광역시 행정구역 명칭 변천사」(편저 박채은)를 발간했다.

울산에서 행정구역 변화는 전근대 시기에는 세력의 통합 읍격의 변화, 근현대 시기에는 1914년 읍면 통폐합, 1962년 울산공업센터 지정 등 지역사회를 뒤흔든 사건이나 기관의 설치 등에 영향을 받아 진행됐다.

향토사 연구가 박채은 씨는 행정구역 명칭의 변천사를 조사하기 위해 「울산부호적대장」, 「조선·대한제국관보」, 「조선총독부관보」 등의 자료를 활용, 문헌자료 등의 한계로 일부 잘못 전해지고 있는 지역(지명)의 정확한 유래와 연혁을 찾아냈다.

울주군의 12개 읍면 중 서생면과 온산읍, 삼동면은 지금까지도 연혁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이번에 자세하게 밝힐 수 있음은 큰 성과로 평가된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울산 개운포의 처용설화에 등장하는 처용이란 인물을 지명에 옮겨 처용리라는 마을을 만든 호적단자의 발굴로 처용리의 실체를 확인했다.

현 온양면 운화리의 전신인 온양면 건천리라는 지명도 발굴했다.

박 씨는 1931년 4월 1일 기존 '동면'에서 '방어진면'으로 개칭됐다는 것은 사료 조사·분석의 착오로 봤다. 1933년 당시 울산군 교육회에서 조사·정리해 출간된 「울산군향토지」에는 모두 동면으로 조사가 돼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왜곡된 사료의 통용(通用)으로 보며 1931년 4월 1일이 아닌 1937년 7월 1일에 '동면이 방어진읍으로 개칭·승격됐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동구청 홈페이지를 보면 1936년 7월 1일 자로 동면이 방어진읍으로 승격됐다고 잘못 나와 있다.

또 지금까지는 '울산군 부내면'이 '울산면'으로 개칭된 시기가 1917년 10월 1일로 알려져 있었으나 부산일보 기사 등 조사·분석에 의해 1918년(대정7) 2월~3월 사이 개칭된 것으로 봤다.

더불어 「영남읍지」(1895)에 범서면의 입암리가 누락 됐는데 읍지가 아주 짧은 기간(1894년11월~1895년5월) 졸속으로 편찬됐기 때문으로 박 씨는 추정했다.

박 씨는 「학성지」(1749)와 「영남읍지」(1895)의 마을 단위(방·촌·리·동)는 각 문헌의 편찬 시기별 전후 시기에 사용된 마을 단위를 참작해 모두 리(里)로 일원화했다.

「울산광역시 행정구역 명칭 변천사」 부록의 '울산, 언양의 읍면제'는 시대와 문헌별로 정리돼 있어서 지역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채은 씨는 "기존 선행연구에서는 다소 무리하고 어긋난 분석, 또는 확인하지 못한 부분 등으로 인해 울산 각 구군청 홈페이지 등 일부 지역에서 연혁의 정체성에 대한 혼동을 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이번 조사·정리의 취지와 목적이, 흐트러져 있는 사실을 찾아 울산의 연혁에 대한 정체성 확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만큼 여러 전문 연구자와 공의를 거쳐서 잘못 전해지고 있던 문제들이 대부분 바르게 정리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된다. 자료 분석을 잘못해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꾸짖고 바로잡아 활용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근대신문으로 본 울산(이현호 편저)
근대신문으로 본 울산(이현호 편저)
 

한편 울산역사연구소는 「근대신문으로 본 울산」(1896~1912)(편저 이현호)도 선보였다.

책은 1896년 독립신문부터 1912년 경남일보까지 신문에 게재된 울산 관련 기사를 엮은 것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울산 관련 기사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확인되거나 인용된 적은 있지만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었다. 이현호 우신고 교사는 이 시기 울산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보, 대한매일신보, 경남일보에 게재된 울산 관련 기사 약 550건을 정리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대한제국-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울산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울산의 국채보상운동, 소금세, 화적, 친위대에 관한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제18호 울산학연구
제18호 울산학연구
 

또 2023울산학연구논총인 제18호 울산학연구도 함께 출간됐다. '서생포왜성의 스토리텔링 개발 및 활용 방안 연구'(김성룡 서울역사박물관), '울산읍성지역 도시 및 건축의 변화 양상에 관한 기초연구' (김헌규(주)제이앤지), '일제식민지기 울산 신사사와 유구의 활용 방안'(문혜진 부경대학교), '울산광역시 및 5개 기초자치단체 사회복지조례 비교 연구'(민기채 한국교통대학교), '조선시대 <울산읍지>편찬과 항목 구성 체계' (하유식 김해시사편찬위원회), '울산 '사회적 임업'의 묘목을 심다'(한상진 울산대학교), '울산지역 농요의 음악적 특징과 문화유산적 가치'(황수임 진주교육대학교)가 실렸다.

책자는 오는 5일부터 23일까지 신청(홈페이지 소통마당)을 받아 선착순 배부할 수 있으며, 파일은 울산연구원 홈페이지(www.uri.re.kr)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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