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울산 북구 제내마을 노거수(곰솔)가 재선충병으로 고사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귀임 기자
12일 울산 북구 제내마을 노거수(곰솔)가 재선충병으로 고사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귀임 기자

울산 제내마을의 200년 된 노거수가 재선충병으로 고사했지만, 마을주민들과 인근 아파트 건설업체 간 ‘노거수 억대 매입 갈등’으로 처리 답보상태에 놓였다. 노거수가 국유지에 있음에도 실질적인 소유권 논란이 겹치며 행정당국이 감염목 벌채를 강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2일 북구와 제내마을 주민대표들, 인근 건설업체의 말을 종합하면 제내마을에 있는 노거수 ‘북구 003호 곰솔’은 지난해 9월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두 달 뒤 고사했지만, 해를 넘긴 지금도 감염목 처리절차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노거수는 나뭇잎 전체가 갈색으로 변해 말라붙었고, 일부 가지는 심하게 휘어지는 등 고사 상태가 뚜렷한 상황이다.

이 나무는 수령 약 200년에 달하는 곰솔로, 주민들은 오랜 기간 보름마다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수호신’처럼 여겨 왔다. 노거수 옆에는 신목(神木)을 모시는 사당도 마련돼 있다.

현행법과 산림청 방제지침 상 재선충병 감염 고사목은 확인 즉시 벌채와 훈증·파쇄 등 방제처리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제내마을 주민들과 인근 아파트 개발업체 간 수년째 이어진 노거수 매입 갈등으로 인해 감염된 고사목은 현재까지도 현장에 방치돼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4~5년 전 인근 아파트 개발이 추진되면서 건설업체 측이 노거수 인근으로 도로를 내기 위해 나무 이전 및 보상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업체 측이 노거수를 1억2,000만원에 매입하겠다는 취지의 계약과 이야기를 했다는 게 주민 주장이다.

제내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 10여 명은 “노거수는 명백히 마을 소유”라며 “우리가 매년 모셔왔기 때문에 당시 건설사에서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해주겠다’며 분명히 마을에다 매입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사도 지내야 하는데, 매입비를 받기 전까지는 몇 번을 찾아와도 올해고 내년이고 절대 못 베어낸다”며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최소 1억5,000만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사업을 맡고 있는 건설업체 측은 입장이 다소 다르다. 공사 과정에서 시공사가 한 차례 변경된 데다 ‘이미 고사한 나무를 이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전 시공사에 인계받기로는 당시 노거수 보호와 이전 비용으로 1억2,000만원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는 이미 고사한 나무인 만큼 매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랜 기간 마을 수호신 역할을 했던 나무인 만큼, 고사에 따른 제사는 별도 비용을 들여 정성껏 지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2일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노거수와 건설업체가 세워놓은 방음벽이 도로를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있다.  김귀임 기자
12일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노거수와 건설업체가 세워놓은 방음벽이 도로를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있다. 김귀임 기자
200년 된 노거수의 모든 잎이 갈색으로 말라 있다. 김귀임 기자
200년 된 노거수의 모든 잎이 갈색으로 말라 있다. 김귀임 기자

고사된 노거수 부지는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로, 노거수 보호·관리 역시 관련 조례에 따라 지자체가 맡고 있다.

다만 노거수의 실질적 소유권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행정당국도 강제 개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북구 관계자는 “재선충병 고사목은 빠른 시일 내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마을 주민과 건설업체 간 갈등에 개입할 수 없고, 실 소유권 문제가 있어 당장 벌채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병으로 약해진 가지를 도로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일부 제거하는 수준의 조치만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례를 계기로 지역 내 노거수에 대한 재선충병 방제와 관리 강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울산시와 5개 구·군은 현재 보호수 62본, 노거수 192본 등 총 254본을 관리·보호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재선충병에 취약한 곰솔·소나무류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보호수 곰솔 13본, 노거수 소나무 67본·곰솔 16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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