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를 앞둔 오윤의 초기 공공미술 벽화가 해체·보존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울산이 이를 공공 문화자산으로 품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은 울산 출신 단편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장남인 오윤 작가.
철거를 앞둔 오윤의 초기 공공미술 벽화가 해체·보존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울산이 이를 공공 문화자산으로 품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은 울산 출신 단편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장남인 오윤 작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오윤(1946~1986)의 초기 공공미술 작품인 서울 구의동 테라코타 벽화가 해체·이전 단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보존 비용과 향후 이관 주체가 여전히 정해지지 않으면서, 울산이 이 작품을 공공 자산으로 품을 수 없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윤은 울산 출신 단편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장남이다. 작품은 서울에 있지만, 울산이 오영수 문학과 오윤 미술을 잇는 ‘부자 예술’ 서사를 지역 문화자산으로 조명해온 만큼 이번 사안은 울산 문화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옛 상업은행 지점 건물 내벽에 설치된 벽화( 테라코타 부조). 그동안 가벽 뒤에 가려져 멸실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올해 건물 매각 과정에서 존재가 확인됐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옛 상업은행 지점 건물 내벽에 설치된 벽화( 테라코타 부조). 그동안 가벽 뒤에 가려져 멸실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올해 건물 매각 과정에서 존재가 확인됐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옛 상업은행 지점 건물 내벽에 설치된 이 벽화는 오윤과 오경환, 윤광주가 1973년 함께 제작한 테라코타 부조다. 마주 보는 두 벽면에 전돌을 붙여 만든 작품으로, 한쪽에는 인물 형상이, 맞은편에는 새 등을 떠올리게 하는 추상적 구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가벽 뒤에 가려져 멸실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올해 건물 매각 과정에서 존재가 확인됐다. 본지는 지난 5월 3일 ‘반세기 만에 발견 오윤 초기 벽화, 재건축에 철거 위기’ 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건물은 2~3개월 안에 철거가 예정돼 있다. 매입자 측은 작품의 안전한 반출에 협력하기로 했지만, 벽체에 붙은 대형 테라코타 작품을 해체·운송·보관하려면 전문인력과 장비, 비용이 필요하다. 보존 전문기관의 해체·이전 작업은 이달 21일 이후로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 당시 은행 영업 중 모습.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1973년 당시 은행 영업 중 모습.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유족과 추진위는 우선 작품을 멸실 위기에서 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명운동 ‘오윤의 벽화를 시민의 품으로’에는 이미 1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이 참여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행정 절차는 건물 철거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고, 당장 해체·이전에 필요한 비용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오윤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추진위와 한국민족미술인협회는 시민 크라우드펀딩과 기금마련전을 동시에 진행한다. 크라우드펀딩은 이달 31일까지 목표액 1억 원으로 추진되며, 기금마련전은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서울 인사동 관훈미술관 전관에서 열린다.

기금마련전에는 오윤의 동료·선후배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는 ‘판매 연대’와 함께, 오윤이 생전에 직접 찍은 판화 ‘칼노래’, ‘춘무인추무의’, ‘무호도’, ‘인물(여)’ 등이 출품될 예정이다.

서인형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 멸실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공공에서 잘 보존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윤의 차남 오상엽 씨는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작품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도, 그것을 지키자고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름을 올려준 것도 유족으로서는 벅찬 일”이라며 “이 벽화는 이제 가족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오 씨는 울산과의 인연에도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울산시에서 의사가 있다면, 울산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윤이 오영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오영수문학관 등 울산의 공공 문화기관에서 오윤의 공공미술 작품을 함께 조명하는 방안도 논의해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윤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예술적 뿌리에는 아버지 오영수의 문학 세계가 놓여 있다. 오영수가 울산의 자연과 서민의 삶을 소설로 그렸다면, 오윤은 민초들의 얼굴과 몸짓, 한과 신명을 목판화와 조형 언어로 새겼다.

울산에서도 오윤 재조명은 이어져 왔다. 2017년 울산문화예술회관 오윤 회고전, 2022년 서울주문화센터 특별전 등을 통해 그를 지역 문화자산으로 조명해왔다.

이번 구의동 벽화는 오윤이 목판화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전, 흙과 전돌을 통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한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95년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행되기 훨씬 전, 민간 은행 건물에 청년 작가들이 남긴 대형 공공미술이라는 점에서도 한국 공공미술사의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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