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AI 시대를 맞아 교육의 혁신과 미래학교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작 미래교육을 실현해야 할 학교 현장은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학생 교육에 집중해야 할 교사와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행정직원들이 새로운 업무가 생길 때마다 업무 분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학교급식실 안전관리, 학교 내 CCTV 운영, 배움터지킴이 관리, 각종 시설물 안전점검 등 새로운 학교 업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업무가 학교로 내려올 때 교육청이 명확한 업무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 실정에 맞게 민주적으로 협의하여 분장하라”는 공문 한 줄이 학교에 내려오면, 교무실과 행정실은 서로 업무의 성격을 해석하며 갈등을 겪게 된다.

  학교 구성원 간의 협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협의는 명확한 원칙 위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원칙 없는 협의는 자율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이며, 결국 학교 구성원 간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뿐이다.

  학교 조직의 역할은 분명하다. 교무 부서는 학생 교육과 수업, 생활지도 등 교육활동에 전념해야 하며, 행정 부서는 학교 운영과 행정 지원을 통해 교육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업무가 발생할 때마다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교육활동에 집중해야 할 교사와 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행정직원 모두가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교육청이 추진해 온 학교업무 경감 정책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업무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사업과 정책이 계속 추가됐고, 누가 맡아야 하는지 불분명한 업무도 함께 늘어났다. 업무의 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업무의 책임과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다른 시·도교육청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무실과 행정실 간 갈등이 반복되는 업무를 중심으로 업무 표준안을 지속적으로 정비하며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도 교육지원청 단위의 학교공통행정지원체계를 확대해 학교가 담당하던 일부 행정업무를 전담기구가 처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학교 갈등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청이 업무의 성격과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공문을 생산하는 기관이 책임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학교는 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

  울산교육청도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업무를 학교에 내려보낼 때마다 ‘학교 자율’이나 ‘민주적 협의’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학교에 맡길 것이 아니라, 업무의 성격과 담당 부서를 명확히 규정하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업무는 교육청 차원의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고, 교육지원청이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업무는 과감하게 이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업무를 놓고 갈등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교육하는 곳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행정실은 안정적인 학교 운영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 학교는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교육청의 역할은 공문을 내려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가 혼란 없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과 책임을 제시하는 것이 교육행정의 본질이다. AI 시대의 미래교육도 결국 신뢰받는 학교에서 시작된다. 교육청은 더 이상 구분이 모호한 업무를 두고 “학교에서 알아서 조율하라”는 식의 행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업무의 성격과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표준 업무체계를 마련하고, 학교가 교육 본연의 역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질적 행정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교무실과 행정실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학교를 학생 중심의 교육공동체로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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