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식 라이프 ‘휘게(Hygge)’]

양초 켜고 달콤한 음식…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

작은 테이블·꽃병·거실 장식 최소화
편안한 분위기 인테리어도 인기

잔잔한 재즈·은은한 조명·따뜻한 차
휘게 감성 묻어나는 카페 속속 등장

곳곳에 자연친화적인 소품들이 있는 울산의 한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지인들과 어울려 소박하고 따뜻한 휘게 라이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김정훈 기자 idacoya@iusm.co.kr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주말 오전, 하얀 솜이불에 파묻혀 창밖을 감상한다. 고요한 산자락에 간이의자를 펼쳐놓고 온 가족 둘러앉아 대화를 나눈다. 친구에게 연말 선물로 받았던 차를 꺼내 마시며 밀린 드라마를 본다. 상상만 해도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이는 한 때 인기를 끌었던 웰빙(well-being)과는 사뭇 다른 일상이다. 건강식단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더해진 삶을 살기 위해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는 것, 덴마크식 라이프 ‘휘게(Hygge)’다.

불안의 시대, 일상 속 여유를 잃은 우리는 ‘휘게’를 갈망한다. 2017년 트렌드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는 ‘휘게’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휘게 대표 아이템인 ‘양초’와 ‘따뜻한 차’.

◆휘바 휘바? 말고 휘게 휘게!

생경한 단어 하나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영국 사전출판사 콜린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는 ‘휘게’였다. 또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 후보 중에도 하나였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는 해시태그 ‘#휘게’를 단 게시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휘게(Hygge)’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휘게는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덴마크어인 휘게가 문서에 기록된 것은 1800년대 초기였으나, 원래 노르웨이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397년부터 1814년까지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또 ‘위로’의 뜻을 가진 고대 스칸디나비아어인 ‘Hygga’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휘게는 곧 자연이다. 메말라버린 나무 화분 아이템도 안성맞춤.

책 <휘게라이프>를 출간한 행복연구소 마이크 비킹 소장은 “Hygga는 ‘분위기’를 뜻하는 단어 Hugr에서 유래했고, Hugr는 게르만어인 Hugjan에서 왔는데, 이는 ‘생각하다’, ‘배려하다’ 뜻의 고대영어 Hycgan과 관련이 있다”며 “흥미롭게도 ‘배려’, ‘분위기’, ‘위안’ 등 오늘날 이야기하는 휘게의 요소들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그래, 어떤 느낌인진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뜻이지?”라고 반문을 할 법하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없을 뿐더러 무용지물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만지고,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 그게 바로 ‘휘게’다.

이처럼 휘게는 특정 사물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편안하고 행복한 분위기와 감정을 한데 묶어 ‘휘게’라고 한다. 비킹 소장은 자신의 책에서 휘게란 ‘촛불 곁에서 마시는 핫 초콜릿 한 잔’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진정한 휘게를 원한다면

‘휘게’는 ‘양초’, ‘벽난로’, ‘나무’, ‘도자기’, ‘담요’, ‘책’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양초가 빠져선 안 된다. 유럽양초협회는 “덴마크는 유럽에서 1인당 가장 많은 양초를 켜는 나라다”고 밝혔다.

달달한 케이크와 차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휘게스러운 공간이 된다.

또 덴마크의 한 일간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을, 겨울 동안 덴마크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매일 양초를 켜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 4%밖에 되지 않는다. 아울러 한 번에 5개 이상 양초를 켜는 비율이 31% 가까이 된다고 하니, 휘게 라이프에 주기적인 환기는 필수다.

‘휘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타닥, 타닥-’ 휘게의 소리는 이것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장작불이 불통을 튀기며 타오르는 소리 그 자체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잔디밭을 걸을 때 신발에 스치는 풀 소리, 맛있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등도 포함이다. 휘게의 맛은 달달하며 기쁨을 주는 맛이다. 차나 케이크에 꿀을 넣거나 당분을 추가하면 더욱 휘게스러운 맛이 된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도넛도 휘게 세계에서는 용서받는 음식이다. 휘게의 냄새는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휘게의 맛, 소리와 함께 후각을 자극했던 것들은 모두다. 빵집에서 갓 구워 나온 식빵 냄새, 엄마 스웨터 냄새, 라벤더 섬유유연제 냄새 등 가장 편안하고 기분 좋았던 순간들의 냄새들이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휘게의 촉각과 시각 또한 이와 비슷하다. 차가운 유리와는 다르게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살갗에 닿아도 놀라지 않을 털실, 솜 등의 따뜻한 느낌이다. 쨍한 햇빛 대신 은은한 조명, 빛의 온도가 낮은 따스한 전등 등이다.

쨍한 햇빛 대신 은은한 조명이 테이블을 감싸고, 화려한 색감 대신 자연광을 중요시하는 휘게 인테리어가 인기다.

◆울산도 휘게 열풍

대한민국은 물론 울산에서도 휘게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모 온라인 커머스 쇼핑몰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꽃병과 향초 등의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50~300% 증가했다.

당 관계자는 “겉으로 치장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상품보다는 집을 꾸미고, 소소하게 만족할 수 있는 리빙 제품들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남구에 위치한 주문제작 가구업체 대표는 “최근 덴마크식 휘게 라이프가 인기를 얻으며, 울산에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인테리어 가구를 찾는 분들이 늘고 있다. 평소 고가의 가구 주문이 많았는데,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단순하고 따뜻해 보이는 느낌의 가구 문의가 많다”며 “지인들이 결혼할 때 가족과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선물하는 등 소규모 가구들이 약 1.5배 정도 더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결혼 1년차인 주부 윤모(34) 씨는 새로운 신혼집을 마련할 때 자연광을 최대로 이용할 수 있는 휘게 인테리어를 구상했다.

윤 씨는 “거실에 장식장을 최소화하고, 꽃병을 곳곳에 놨다. 또 암막커튼 대신 햇빛이 어느 정도 들어올 수 있는 커튼을 달았다”며 “거실 중앙엔 러그를 깔아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가장 중요한 향초는 각 방마다 향을 달리 해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휘게 스타일을 지향하는 동네 카페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중구의 한 카페엔 향초들이 줄지어 불 밝히고 있고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직장인 이현정(25) 씨는 최근 소란스러운 브랜드 커피전문점보다 조용히 휘게를 누릴 수 있는 개인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씨는 “사회초년생인 제가 받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삶의 소소한 것부터 챙겨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나친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휘게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들을 찾아 다닌다”고 말했다.

켜켜이 쌓인 스웨터와 담요가 절로 아늑함을 자아낸다.

◆오늘 ‘휘겔리’ 하다

끝으로 아직도 ‘휘게’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를 마련해봤다. 집에서 쉬는 날,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순서대로 ‘휘게’해도 좋다. 먼저 휘게 기본 아이템인 양초를 준비한다.

은은한 향을 내뿜는 양초를 곁에 둔다. 입에서 녹아내리는 케이크도 함께 준비한다. 은박지에 싸둔 먹다 남은 초콜릿도 훌륭하다. 달달함을 간헐적으로 가시게 해 줄 따뜻한 차도 끓인다. 녹차, 루이보스, 밀크티, 재스민 등 좋아하는 차면 뭐든지 통과다.

또 좋아하는 책, 영화, 드라마도 골라본다.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현실처럼 담아내는 작품세계는 뭐든지 간에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체온을 유지해줄 수 있는 양말 한 켤레도 신어본다면 금상첨화. 책 읽기가 지루하다면 오래된 편지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종이와 펜을 꺼내 수년이 지난 편지에 답장도 써보자.

물론 음악이 빠져서는 안 된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도 훌륭하다. 마지막으로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오늘 하루 휘겔리(Hyggeligt 휘게의 형용사적 표현) 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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